인공지능(AI) 산업 육성에 필요한 법적 기반인 ‘AI 산업 육성 및 신뢰 기반 조성에 관한 법률안’, 이른바 ‘AI 기본법’ 제정이 지연되면서 글로벌 경쟁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21대 국회에서 1년 넘게 계류되다 폐기된 AI 기본법이 22대 국회에서 새로 발의됐지만 여야 간 정쟁으로 인해 당분간 법안 처리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10일 정보기술(IT) 업계와 국회에 따르면 AI 기본법 소관 상임위원회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원회는 관련 법안 6건을 발의했지만 이를 처리할 법안소위원회와 전체회의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과방위는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최근 잇달아 전체회의를 개최했지만 방송통신위원회 운영과 공영방송 이사 선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라인야후 사태’ 대응 및 제4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취소 책임을 둘러싼 여야 갈등이 해결되지 않아 AI 기본법을 포함한 다른 현안은 뒷전으로 밀린 상태다. AI 기본법은 이미 지난해 2월 21대 국회에서 법안이 발의되고 여야 모두 입법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지만 법 제정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AI 기본법은 정부가 AI 기업에 대한 연구개발(R&D) 지원과 규제 대응을 통해 국내 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담았다. 조만간 대통령 직속 국가AI위원회를 출범시킬 예정인 정부는 범부처 AI 반도체 육성 방안인 ‘AI 반도체 이니셔티브’도 추진 중이지만 정작 법적 근거를 체계화한 법령이 부재한 상황이다. 게다가 정부는 5월 주요국 정상과 빅테크 수장이 참여한 ‘AI 정상회의’ 개최를 계기로 글로벌 AI 규제 대응을 주도한다는 방침을 세운 만큼 국내 규제를 먼저 확립하는 일도 시급하다.
산업 특성상 AI 규제는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이는 글로벌 시장에서 자국 기업의 경쟁력과 직결되기 때문에 각국이 선제적으로 규제 표준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례로 최근 유럽연합(EU)이 먼저 AI법을 제정하고 연말부터 순차적으로 시행하면서 빅테크들도 혐오와 편견 학습, 딥페이크 등 AI 부작용을 예방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했다. 미국도 지난해 10월 조 바이든 대통령이 관련 규제 조치를 담은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AI 기본법 제정이 늦으면 기업들은 AI를 개발해놓고 뒤늦게 생긴 규제에 걸려 사업 차질을 빚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며 국내 AI 기본법 제정이 지연되는 상황을 우려했다. 하정우 네이버클라우드 AI이노베이션센터장은 최근 국회에서 열린 포럼에 참석해 “과방위를 과학기술과 방송으로 분리해 (AI 기본법을 포함한) 과학기술 관련 법안을 빠르게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