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편의점도 파는데?” 약사 상담해도 소화제는 안된다는 복지부

일반의약품 스마트 화상판매기 실증특례 1단계 완료

2단계 사업 앞두고 ‘품목 확대’ 시도에…복지부 ‘반대’

소화제·소독약 등 긴급 구매 수요 높은 일반약 판매 불가

쓰리알코리아 관계자가 일반의약품 스마트 화상판매기에서 약사와 원격 복약 상담하는 과정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 제공=쓰리알코리아쓰리알코리아 관계자가 일반의약품 스마트 화상판매기에서 약사와 원격 복약 상담하는 과정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 제공=쓰리알코리아




약국이 문을 닫는 늦은 밤 또는 공휴일에 약사와 원격상담을 거쳐 일반의약품 구매가 가능한 화상투약기의 품목 확대가 좌초 위기에 놓였다.



10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작년 3월 규제샌드박스 실증 특례를 시작한 ‘일반의약품 스마트 화상판매기(화상투약기)’의 부가조건 변경에 대해 ‘불수용’ 의견을 제시했다. 개발사 입장에서는 소독약, 소화제 등 긴급 구매 수요가 높은 일반의약품을 취급하며 사업성을 극대화하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됐다.




화상투약기는 약사 출신인 박인술 쓰리알코리아 대표가 2012년 개발한 일명 ‘의약품 자동판매기’다. 기계 전면에 모니터와 음성 송수신 장비가 장착돼 환자가 모니터를 통해 증상을 말하면 약사가 원격으로 맞는 약을 추천해준다. 긴급 상황에 처한 환자가 약국이 문을 닫았을 때도 의사 처방전이 불필요한 일반의약품을 바로 살 수 있다. 화상투약기는 일반의약품 판매장소를 약국으로 제한한 현행 약사법에 가로막혀 11년간 빛을 보지 못했다. 2013년 인천 부평, 2021년 경기 용인 소재 약국 앞에 설치됐다가 지역약사회의 반발로 철거됐고 약사법 개정 시도는 약사단체 반발로 번번이 무산됐다. 2019년 정보통신기술(ICT)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를 신청하고도 심의위원회에 오르기까지 3년여 걸렸다. 조건부 승인을 받고 과기부와 복지부의 현장 실사, KC 인증 등을 거쳐 2023년 3월 수도권 약국 7곳에서 화상투약기를 시범 운영하는 1단계 사업에 돌입한 지 1년 4개월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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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알코리아는 2단계 사업에 앞서 건위소화제, 기타의 소화기관용약, 순환계용약, 외피용제, 외피용 살균소독제, 사전피임약, 치과구강용제, 이비인후과용제, 수면유도제, 기타 화학요법제, 기생성 피부질환용제, 이담제, 소화용 궤양용제 등 13개 약효군을 확대해 달라는 부가조건 변경 신청안을 냈다. 1단계 사업 당시 해열·진통소염제, 진경제, 안과용제, 항히스타민제, 진해거담제, 정장제, 하제, 제산제, 진토제, 화농성 질환용제, 진통·진양·수렴·소염제 등 11개 효능군의 53개로 취급 품목이 제한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현장 약사들의 의견을 반영했다. 과기부의 사업 부가조건에 따르면 약국개설자, 복지부, 사업자가 협의해 약효군 변경이 가능하다.

서울경제신문이 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과기부와 복지부 주재로 약효군별 추가 취급을 검토하는 회의가 두 차례 열렸다. 특히 작년 11월 열린 1차 회의 당시 약대 교수 등 전문가들은 업체가 신청한 13개 효능군 중 포비돈 같은 상처연고, 소화제, 무좀약 등 6개에 대해 화상투약기를 통한 판매가 적절하다고 봤다. 나머지 7개도 처방전 없이 구매 가능한 일반의약품인 만큼 약사의 상담을 거치면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의견이 나왔다. 주무부처인 복지부의 반대로 판매 범위 확대에 제동이 걸린 셈이다. 박 대표는 “소화제는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안전상비의약품에도 포함돼 있다. 안전성과 유효성을 근거로 허가된 일반의약품을 약사가 판매하는데 무엇이 문제냐”며 “복지부가 약사단체의 눈치를 보면서 규제샌드박스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졌다”고 밝혔다. 대한약사회는 대면원칙 훼손, 의약품 오투약으로 인한 부작용 증가 등을 이유로 화상투약기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규제샌드박스 승인 직후에도 삭발 투쟁과 대규모 반대 시위를 벌이며 강력 반발했다.

대한약사회 회원들이 2022년 정보통신기술(ICT)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 심의위원회를 앞두고 약 자판기 저지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연합뉴스대한약사회 회원들이 2022년 정보통신기술(ICT)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 심의위원회를 앞두고 약 자판기 저지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연합뉴스


과기부에 따르면 실증특례 업체의 조건변경 신청에 대해 규제부처가 불수용 의견을 내는 건 다소 이례적이다. 과기부 담당자는 “사전검토위원회와 심의위원회 등의 절차가 남아서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며 “국민 건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안이라 (복지부가) 더욱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주무부처인 복지부의 입장이 바뀌지 않는 한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는 게 복수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업체의 요구 외에 부가조건을 변경해야 할 특별한 여건 변화가 없었다”며 “1단계 사업에 참여한 약국이 7곳에 불과해 내년 4월로 예정된 실증특례를 마치고 평가를 거쳐 (품목 확대 등을) 결정하는 편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안경진 의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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