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님은 개인 일이든, 회사 일이든 지고는 못 배기는 DNA를 갖고 있는 분입니다.”
2011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현장을 방문한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005930) 사장은 “새해를 맞아 이건희 회장이 특별히 주문한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도전 정신에 관한 한 전 세계에서 회장님을 따라잡을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삼성 경영에서 ‘승부 근성’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설명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2024년 이재용 회장이 글로벌 경영 현장의 선두에서 다시 한번 치열한 승부 근성과 절박함을 강조했다. 삼성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의 경쟁 심화 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위기를 돌파하고 미래 먹거리를 발굴해야 한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미래 사업 측면에서 인도는 그 어느 곳보다 중요한 의미를 가진 곳으로 볼 수 있다. 인도가 중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인구 대국으로 올라서는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잠재 성장력을 갖춘 곳이기 때문이다. 인도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세계 5위, 올해 주요국 경제성장률 전망 1위(IMF)를 기록했다. 그만큼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창출할 여지도 많다는 뜻이다. 국내 한 대기업의 전략 담당 임원은 “2000년대 이후 중국이 세계경제의 기관차 역할을 했다면 앞으로는 인도가 그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인도 없이 기업의 미래를 말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삼성은 이미 30여 년 전부터 인도에 공을 들여왔다. 1995년 인도에 첫 진출한 뒤 30여 년간 꾸준히 투자를 거듭해 현재는 인도 최대 전자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2007년부터 모바일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한 노이다 공장은 2018년 신공장 추가 준공으로 삼성 스마트폰 사업의 핵심 생산 거점이 됐다. 현지 임직원 수는 1만 8000여 명, 삼성 제품을 직영으로 판매하는 소매점과 AS센터는 각각 20만 곳과 3000곳에 달한다.
초격차 기술 확보의 기반인 인재 수급의 중추 기능도 하고 있다. 인도는 초중고에서 코딩을 비롯한 소프트웨어 교육을 필수과목으로 가르치며 미국·중국과 함께 3대 정보기술(IT) 인재 시장에 속한다. 삼성전자는 델리 인도공과대, KLE기술대 등 주요 이공계 대학과 산학 협력을 진행하며 연구소 규모를 키워왔다. 해당 연구소는 현지 제품 개발뿐 아니라 한국 본사와도 긴밀하게 협업해 주요 제품 로드맵에 관여한다. 일례로 벵갈루루 연구소는 6억 명이 사용하는 인도 대표 언어 ‘힌디어’를 갤럭시 AI에 접목했다.
이번 출장은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 의미도 갖는다. 이 회장이 13일 참석한 암바니가 결혼식은 단순히 결혼식 이상의 네트워킹 장으로 평가받는다. 이번 결혼식에는 이 회장을 비롯해 샨터누 너라연 어도비 최고경영자(CEO), 마크 터커 HSBC 회장, 아민 나시르 아람코 CEO 등 주요 기업인부터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 스티븐 하퍼 전 캐나다 총리 등 유력 정치인들이 총출동했다. 삼성이 릴라이언스그룹의 통신 자회사인 지오에 2012년부터 4세대(4G) 네트워크 장비를 단독으로 공급하고 있고 2022년에는 5세대(5G) 장비 공급계약을 체결한 만큼 네트워크 협력 확대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을 가능성도 있다. 인도는 무선통신 가입자 수 11억 명으로 세계 2위 시장이다.
앞서 이 회장은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 등 빅테크 수장들과 잇따라 교류하며 미래 기술 트렌드를 공유했다. 누바르 아페얀 모더나 공동 설립자 겸 이사회 의장을 비롯해 호아킨 두아토 J&J CEO, 조반니 카포리오 BMS CEO 등 글로벌 바이오 시장 리더들과도 지속적으로 만나 삼성의 바이오 사업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