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런닝구' 입은 '짠내' 나는 자취생 패션 공개한 원희룡…한동훈은 해외여행·나경원은 '법대 아름이' 시절 공개

원희룡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의 고교 시절 사진. 사진=CBS 김현정의 뉴스쇼 유튜브 캡처원희룡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의 고교 시절 사진. 사진=CBS 김현정의 뉴스쇼 유튜브 캡처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 4명의 젊은 시절 사진이 공개됐다.



1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자 4차 방송토론에서 방송사의 요청에 따라 후보자들이 준비한 젊은 시절 사진을 소개한 것이다. 한동훈 후보는 로커를 연상하게 하는 장발 곱슬머리 사진을, 원희룡 후보는 학창 시절 러닝셔츠를 입고 찍은 사진을, 나경원 후보는 대학 시절 MT 사진을, 윤상현 후보는 군 복무 시절 사진을 각각 들고 나왔다.

나경원 후보가 공개한 대학 시절 사진. 빨간 원이 나 후보, 오른쪽 여성이 전주혜 전 의원. 사진=CBS 김현정의 뉴스쇼 유튜브 캡처나경원 후보가 공개한 대학 시절 사진. 빨간 원이 나 후보, 오른쪽 여성이 전주혜 전 의원. 사진=CBS 김현정의 뉴스쇼 유튜브 캡처



나 후보는 서울대 법대 4학년 시절 MT 사진을 공개했다. 그는 “국제법학회에서 을왕리로 MT 갔을 때 사진 같다”고 말했다. 함께 사진을 찍은 이들에 대해선 “다 후배들이다. 남편도 같이 갔는데 어디 갔을까”라고 말했다. 이어 “국회의원을 하셨던 분도 있고 비례대표 공천관리위원장을 하신 분도 있다”고 말했다. 나 후보의 오른쪽에 있던 여자 후배가 당시 1학년이던 전주혜 전 국민의힘 의원이다. 당시 고민에 대해 나 후보는 “사법고시를 봐야 하냐 말아야 하냐를 두고 고민이 많았다”며 “대한민국을 위해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느냐, 우리의 헌법 정신을 어떻게 실현할지 그런 고민을 했던 때”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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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현 후보가 공개한 20대 사진. 빨간 원이 윤 후보. 사진=CBS 김현정의 뉴스쇼 유튜브 캡처윤상현 후보가 공개한 20대 사진. 빨간 원이 윤 후보. 사진=CBS 김현정의 뉴스쇼 유튜브 캡처


윤 후보는 군 복무 시절 사진을 공개했다. 그는 “사무실에서 20대 사진을 찾으라고 하니까 찾을 게 없어서 집에 가서 옛날 조지타운 대학 다닐 때 그걸 찾으려다가 사무실에 있는 게 저게 나와서 가져왔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에 제가 군대를 마치자마자 소설가 이병주 선생님, 예전 주미 대사 하셨던 김경원 선생님을 찾아갔다”면서 “제가 그때 외국에 대한 관심이 많았는데 이병주 선생은 단연코 여기저기 경험을 쌓으라고 그랬고 김경원 주미대사는 ‘너는 박사를 해라. 박사는 일종의 라이선스다. 드라이버 라이선스다’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고 덧붙였다.

한동훈 후보의 19세 시절. 사진=CBS 김현정의 뉴스쇼 유튜브 캡처한동훈 후보의 19세 시절. 사진=CBS 김현정의 뉴스쇼 유튜브 캡처


한 후보는 굵은 웨이브 펌을 한 듯한 곱슬머리에 안경, 목걸이를 한 사진을 공개했다. 그는 “당시 도어즈, 저런 스타일을 좋아했다”며 “당시 국외 여행이 처음으로 자유화됐을 때였는데, 그래서 배울 수 있었던 것도 많았고, 그 전 세대에 비해 포용력과 유연함이 생길 수 있었던 세대로 기억한다”고 설명했다. 도어즈는 1960년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한 록(Rock) 밴드다. 그는 “어릴 때부터 뭐가 되고 싶은 게 없었다”며 “무엇인가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었다. 저때나 지금이나 철 안 든 건 비슷한 것 같다”고 했다.

가장 눈길을 끈 사진은 원 후보의 자취생 시절의 ‘일상 사진’이다. 원 후보는 까까머리에 런닝셔츠를 입고 파란색 선풍기를 배경으로 한 자취생 시절 사진을 공개했다. 그는 "저희 집은 전깃불도 안 들어오는 시골 농사 집안이기 때문에 고등학교 가면서 제주시로, 그리고 대학 오면서 서울로 와서 결혼할 때까지 자취 생활을 쭉 했었다"며 "그래서 사진 찍어줄 사람이 잘 없으니까, 유일한 사진이어서 갖고 왔다"고 말했다. 그 시절 꿈을 묻자 그는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응원받아 대학에 왔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먼저 기반을 잡아야 되느냐, 아니면 당시 군부 독재의 민주화, 그리고 저희 집보다 더 어려워 보이는 많은 서민과 빈민들, 공적인 정의를 위해 살아야 되느냐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며 "결국 민주화운동, 노동운동으로 가게 됐다"고 했다

연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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