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소환 과정에서 불거진 ‘총장 패싱’ 논란이 거세지는 가운데 이원석 검찰총장이 김 여사 수사팀에 대한 감찰이나 문책 등 강경책을 고심하고 있다. 수사를 주도한 서울중앙지검이 총장 보고를 건너뛴 채 소환 장소까지 검찰청이 아닌 제3의 장소를 선택한 만큼 내·외부의 역풍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이날 김 여사 수사팀에 속한 한 검사는 대검의 ‘총장 패싱’ 진상 조사 착수에 반발해 사표를 제출했다. 이 총장이 ‘감찰’이라는 강수를 두기도 전에 ‘검찰 대 검찰’이라는 사상 초유의 갈등이 시작됐다.
이 총장은 22일 오전 9시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출근길에서 기자들과 만나 수사팀이 김 여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법의 원칙이 지켜지지 못했다”며 국민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이 총장은 서울중앙지검으로부터 조사 장소와 시간조차 보고받지 못한 부분에 대해 “검찰청을 제대로 이끌지 못한 본인의 책임”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과 갈등 등 거취 논란에 대해서 “2년 2개월이나 검찰총장의 역할을 했는데 이 자리에 무슨 미련이 남아 있겠나”면서도 “국민과 헌법 원칙을 지키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김 여사 수사팀의)조사 결과에 대해 상세한 보고를 받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총장은 출근 직후 이 지검장으로부터 김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사건에 대한 조사를 대면 보고 받았다. 이달 20일 오후 11시 30분 유선으로 사후 보고를 받은 뒤 약 35시간 만이다. 이 총장은 이 지검장에게 사전 보고 없이 김 여사를 대면 조사한 데 대해 질책성 발언을 이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검장은 “총장이 제3의 장소를 반대할 수 있다는 우려로 자체 판단으로 조사를 했다”는 취지로 답하며 여러 차례 사과의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이 총장은 대면 보고 이후 즉각 대검찰청 감찰부에 진상 조사를 지시했다. 앞서 도어스테핑에서 “중앙지검장으로부터 (김 여사) 조사와 관련해 직접 보고를 받은 뒤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며 사후 보고에 대한 엄중 조치를 예고한 바 있다.
이 총장은 그간 김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사건 조사를 놓고 수차례 ‘성역 없는 수사’를 지시해왔다. 또 취임 이후부터 줄곧 ‘법불아귀(法不阿貴·법은 귀한 자에게 아첨하지 않는다)’를 들어 헌법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수사 원칙을 강조해왔다. 이 총장은 수사에 동력을 싣기 위해 직접 중앙지검에 전담팀 구성을 지시할 만큼 해당 사건에 신경을 써왔다.
관건은 ‘패싱’에 대한 진상 조사 이후 이 총장이 감찰 및 면책 등의 강수를 둘지 여부다. 검찰청법 제11조는 검찰 보고사무규칙을 두고 검찰 사무보고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각급 검찰청장은 사회의 이목을 끌 만한 중대한 사건, 정부 시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만한 사건 등을 보고해야 한다. 현직 영부인 소환 조사는 중대 사안에 해당한다.
이 총장이 감찰을 실시할 경우 검찰 내부의 대립각은 보다 극명해질 전망이다. 실제 김 여사의 ‘디올백’ 수사팀에 파견된 김경목(사법연수원 38기) 부부장 검사는 대검 감찰부의 진상 조사 착수에 불만을 표시하며 사표를 제출했다. ‘패싱 사건’을 둘러싼 검찰과 검찰간의 갈등이 현실화된 셈이다.
이날 대통령실 관계자는 법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발언과 관련해 “검찰 내부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명품 가방 제출 검토 여부에 대해서는 “수사와 관련된 내용으로 검토가 필요한 사항으로 제출 시기를 말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비공개 조사가 특혜라는 주장에 대해서도)현직 대통령 부인이 소환돼 대면 조사를 받은 것은 전례 없던 것으로 특혜 주장은 과도하다”고 반박했다.
한편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지검장 간 이례적인 갈등에도 검찰 내·외부의 첨예한 사안에 대한 격론이 이어지는 검찰 내부망(이프로스)에는 별다른 언급이나 글이 없어 오히려 주목을 끌었다. 검찰 관계자는 “많은 구성원들이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이례적으로 받아들이며 일단은 다들 말을 아끼는 듯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