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의대 교수들 사이에서 ‘하반기에 모집한 전공의 교육을 거부하겠다’는 움직임이 나타나자 정부가 “헌법이나 인권적 가치에 반한다”며 법적 조치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날 ‘빅5’ 병원과 고려대 의대 교수들은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문을 내는 등 반발이 확산하는 모양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23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최근 일부 의대 교수들이 하반기에 모집할 전공의 교육과 지도를 거부하는 ‘수련 보이콧’ 의사를 밝혔다”며 “환자의 불안과 불편을 외면하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권병기 복지부 필수의료지원관(국장)도 브리핑에서 “출신 학교나 출신 병원으로 제자들을 차별하겠다는 성명은 의학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자로서 온당한 태도가 아니고 헌법이나 인권적 가치에도 반한다”며 “각 병원은 전공의법에 따라 수련 계약과 수련 규칙의 내용을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의대 교수들의 전공의 교육 거부가 형법상 업무방해죄, 사립학교법상 징계 사유에 해당한다고 본다. 교육 거부에 민법상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와 관련해 권 국장은 “교수들의 보이콧이 가시화할 경우 내부적으로 법적 조치를 검토해나가겠다”고 했다.
환자단체들도 의대 교수들의 움직임을 거세게 비판했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의료 공백으로 인해 중증·희귀질환으로 진단받는 것이 죽음과 공포 그 자체가 된 상황에서 이런 입장을 발표한 것”이라며 “환자의 고통과 생명을 포기하고 국민의 치료권을 방해하는 행동은 자랑스러운 학풍이 아니라 몰염치하고 반인륜적 학풍임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철회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가톨릭대·고려대·서울대·성균관대·연세대·울산대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입장문에서 “전공의들의 온전한 복귀 없이 일부 충원에 의존하는 미봉책 전공의 수련 시스템으로는 양질의 전문의 배출이 어렵다”며 “특히 상급 연차 전공의 부재 상황에서는 1년 차 전공의 수련의 질 저하가 매우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비대위는 이어 “지방 사직 전공의가 수도권 병원으로 옮길 경우 가뜩이나 열악한 지역 필수의료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전공의 교육의 주체인 진료과 교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의 지도에 따라 진행되는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 동의하기 어렵고 복지부·교육부는 수련병원 정상화, 의대 교육 현장 정상화를 위해 근본적 처방으로 상생의 정책을 펼쳐달라”고 촉구했다.
삼성서울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들도 입장문을 내고 “하반기 전공의 모집 시 올바른 의료 정립을 희망하는 전공의들의 온전한 복귀에 지장이 있을 것”이라며 “본과의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하반기 전공의 모집과 별개로 의료 개혁에 속도를 낸다. 조 장관은 중대본회의에서 “이제는 국민과 의료 현장이 바라는 진정한 의료 개혁에 더욱 집중해야 할 시간”이라며 “관행처럼 이어져온 의료 체계를 바꾸지 않으면 의료 불균형 문제가 가속화돼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는 올 4월 출범한 의료개혁 특별위원회에서 의료 개혁 과제들을 구체화한 뒤 법령 개정안과 재정투자 계획을 포함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다음 달 말 발표하기로 했다. 조 장관은 “밀도 있는 수련 체계 혁신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상급종합병원이 중증·응급·희귀질환 진료에 집중하고 전문의 등 숙련된 인력 중심으로 운영되도록 구조 전환과 전달 체계 정상화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중증·고난도 진료 등 필수의료에 대한 공정하고 충분한 보상 방안과 건보 수가 체계 혁신 방안을 제시하고 균형 잡힌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