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가 지난 21대 국회에서 간첩법 개정을 하지 못한 데 대해 더불어민주당 책임론을 제기했다가 야권의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한 대표가 형법상 간첩죄에서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지 않은 것을 두고 “민주당이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야당 의원들이 각종 근거를 제시하며 오히려 당시 법무부 장관을 지낸 한 대표의 책임을 묻기 시작한 것이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31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한 대표가 민주당 탓으로 돌리고 싶겠지만, 안타깝게도 사실이 그렇지 않다”며 “회의록을 한번이라도 읽었다면 좋았을텐데 아쉽다”고 비꼬았다. 박 의원은 “당시 법원행정처와 법무부 간 이견 조율을 위해 심사가 진행됐고 국민의힘 의원들 또한 개정안 우려점을 개진한 바 있다”며 “당시 소위에서 ‘적국’을 ‘외국’으로 넓힐 경우 일명 ‘산업 스파이’ 같은 사례도 간첩죄로 처벌할 것인가 등의 논의가 이어졌고 결론 내지 못하고 계속 심의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런 식의 가짜뉴스는 곤란하다”고 맹폭을 가했다.
민주당은 한 대표에게 “왜 법무부 장관 시절 간첩죄 개정 요구를 끝내 외면했냐”며 화살을 한 대표에게 돌렸다. 강유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당시 개정안을 완강하게 반대한 건 법원행정처였고 국민의힘 소속 소위 위원들도 입법적인 검토가 필요하니 다음에 다시 논의하자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며 “반면 형법 개정안을 발의한 우리당 의원들은 개정안 심사와 통과를 위해 수년 동안 거듭 노력해 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장관일 때 놓치더니 왜 애먼 책임을 이제와 민주당에 떠넘기냐”고 쏘아붙였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인 김민석 의원도 페이스북에 “책임이 있다면 본인이 더 크고, 그리 통과시키고 싶었다면 본인이 장관 시절 노력했어야 할 일”이라며 “사실을 왜곡하는 저질 프레임 정치로 첫 당대표 정치를 시작하는 것을 보니 딱할 뿐”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21대 국회 당시 법안 심사에 참여하지 않았던 조국혁신당도 날을 세웠다.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은 같은 날 입장문을 내고 “간첩법 개정안에 제동을 건 것은 민주당이 아니라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이었던 박영재 대법관 후보자”였다며 “간첩법 개정안이 그렇게도 중요하다면 왜 박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은 관련 질의를 한 번이라도 한 적 없냐”고 꼬집었다.
앞서 한 대표는 지난달 30일 페이스북에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는 간첩법은 지난 21대 국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 제1소위에서 3차례나 논의됐지만 처리되지 못했다”며 “민주당 의원들은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신중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하며 법안 처리를 막았다. 민주당이 반대하지만 않으면 이번 국회에서 신속히 개정안이 통과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해외·대북 정보 수집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 소속 해외 비밀요원들의 신상 정보 등을 유출한 혐의를 받는 정보사 소속 군무원이 구속된 사실을 가리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