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이지언(逆耳之言)은 귀에 거슬리는 쓴소리지만 바른소리인 경우가 많습니다. 미술평론가이자 기획자, 행정가인 정준모의 칼럼 ‘여기, 역이(逆耳)’의 연재를 시작합니다.
이립(而立)의 광주비엔날레
1995년 대한민국 광주에서 처음 열린 광주비엔날레가 올해로 30주년을 맞는다. 나이 서른이면 우리나라에서는 이립(而立)이라 한다.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공자가 자신의 체험에 바탕을 두고 논어 위정편에서 한 말이다. 공자는 30세가 되어서 본인의 학문이 기초가 확립되었다는 의미로 이렇게 말 한 것이라 알려져 있다.
“우리의 비엔날레”라 외쳤던 광주비엔날레의 열다섯 번째 버전인 제15회 비엔날레가 곧 열린다. 오는 9월 7일부터 12월 1일까지 86일간 개최한다고 한다. 사실 홀수 해인 1995년 처음 열려 통상적으로 홀수 해에 열리는 것이 원칙이나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월드컵과 함께 비엔날레를 개최할 요량으로 짝수 해에 열기 시작했다. 이후 이런저런 이유로 홀수와 짝수 해를 오락가락하더니 2020년 개최 예정이었던 제13회 광주비엔날레가 팬데믹으로 2021년 4월에 열렸고, 이후 제14회 광주비엔날레도 그 여파로 2023년 4월에 개최됐다. 올가을 개최 예정인 제15회 광주비엔날레는 통상 짝수년도 9월에 열렸던 광주비엔날레의 일정으로 되돌아 간 셈이다. 되돌아갔다고 하지만 다시 홀수 해로 옮겨가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주최측이 부여하는 큰 의미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재)광주비엔날레(대표이사 박양우)는 창설 30주년인 2024년 제15회 광주비엔날레를 통해 “다시 한번 세계 비엔날레의 역사에 전환점을 찍고 광주비엔날레의 명성을 재확인할 예정”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아직 발표하지 않은 깜짝 프로그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약 86일간 열린다는 제15회 광주비엔날레의 주제나 프로그램을 들여다보면 글쎄 ‘전환점’과 ‘명성의 재확인’을 무엇을 가지고 할지 기대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는 것이 사실이다.
아랫돌 빼다 웃돌 괴기
이립에 이른 광주비엔날레가 30주년을 맞아 감독 선임과 주제 및 작가 선정에 이르기까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하지만 광주비엔날레를 바라보는 많은 이들은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다. 다른 여러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일단 예산문제다. 올해 30주년을 맞은 제15회 광주비엔날레는 지난해보다 39억 원 늘어난 역대 최대규모인 151억 원을 투입한다고 했지만, 역대 최대규모라는 예산의 실상은 “아랫돌 빼다 웃돌 괴기”에 다름 아니다.
광주시는 광주비엔날레 예산을 비엔날레 개최 전해(前年)의 ‘준비비용’과 개최 당해 년 ‘개최비용’으로 나누어 편성해왔다. 그래서 광주시는 지난해 준비비용으로 50억, 올해 개최비용으로 39억, 총 89억 원을 편성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앞선 제14회 비엔날레의 준비비용 20억 원과 개최 비용 84억 원을 포함한 총 104억 원에 비하면, 약 15%가 삭감된 수준이다. 특히 비엔날레가 열리는 당해 년의 개최비용은 84억에서 39억으로 전년 대비 57%, 45억원이 삭감됐다. 이렇게 전 년에 비해 절반 이상 줄어든 예산을 두고 많은 이들은 비엔날레가 과연 제대로 열릴 수 있을지 걱정했다. 이렇게 걱정이 커지자 추경을 통해 개최비용을 확보하겠다고 하더니, 갑자기 광주시와 (재)광주비엔날레는 올 예산을 지난 14회 비엔날레보다 총 47억 원이 많은 151억 원으로 편성한다고 발표했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예산을 마련했나 살펴보니 결국 증액된 예산은 광주시 부담이 아니라, (재)광주비엔날레가 부담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재)광주비엔날레는 그 증액분을 2024년 현재의 381억 2,147만 원인 자본금 중 그 16%인 62억 원을 헐어서 쓴다는 것이다. 결국 증액은 가장 손쉬운 방식으로, 종잣돈인 자본금에 손을 대는 방법을 선택해 가능한 것이었다.
지난 14회 광주비엔날레의 재단 자부담금은 8억원이었다. 그간 재단은 자본금에서 약 10억 내외의 비용을 자부담하고, 행사가 끝나면 회수된 수익금으로 이를 보전하며 자본금을 지켜왔다. 하지만 이번 62억 원은 상환이 그리 녹록한 액수가 아니다. 예년과 달리 약 6배의 큰 수익을 올려야 자본금을 원상회복할 수 있는 거금이다. 총예산을 삭감했다 비엔날레의 정상개최를 걱정하는 이들이 늘어나자 결국 자본금에 손을 대는, 빚잔치와 다름없는 방식으로 제15회 비엔날레를 개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종잣돈
자본금은 지속 가능한 광주비엔날레의 마지막 보루다. 재단 자부담금은 설립 당시 조성된 기금과 매회 입장료 수입, 후원금 등으로 이루어진 자본금으로 구성된 금싸라기 같은 돈이다. 사실 1995년 광주비엔날레를 창설할 당시에는 재단법인의 설립이 고려되지 않았다. 사실 국내외 미술계는 광주비엔날레가 1회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1회가 마지막 회가 될 것”이란 말들이 횡행했다. 당시 세계는 광주와 광저우(广州)도 구분 못 하던 시절이었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고 영속적 행사라는 사실을 세계에 천명하기 위해서 비엔날레를 개막하고 조금 숨을 고른 시점에서 재단법인 설립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1995년 당시 사무국은 재단설립을 위해 200억 원을 목표로 기금조성에 들어갔다. 1회 비엔날레의 수익금을 포함한 186억 원의 현금과 95억 원의 어음 등 총 281억 원을 마련해 1997년 기금 152억 원의 자본금으로 재단법인 광주비엔날레를 설립했다. 1998년 중앙정부가 기금조성을 위해 10억 원을 지원한 후 1999년에는 자본금이 204억 원으로 늘었다. 2002에는 토머스 허바드 주한 미국대사가 광주를 방문했다가 기금으로 4만 달러(5200만원)를 기탁하기도 했다. 이렇게 모이고 쌓인 자본금이 2014년 285억 원에 이르렀고 현재 자본금은 381억 2,147만 원에 이른다. 게다가 이 자본금에는 지난 30여 년간 선의의 기업과 개인의 기부금, 출향 인사들의 애정어린 고향사랑, 어렵사리 쥐어짜 마련한 수익금이 포함돼 있다.
자본금에 손댄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동시에 중요한 일이다. 돈 쓸 곳 많은 정부가 재정보다 손대기 쉬운 공적 기금을 쌈짓돈처럼 꺼내 쓰면서 기금의 재정이 급속도로 악화해 나라의 곳간이 비어가는 것처럼 (재)광주비엔날레가 곳간에서 꺼내 행사비로 지출한 돈을 광주시가 나중에 채워 줄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는 오산이다.
광주광역시의 재정자립도는 40.7%로 전국 광역시 중 최하위다. 예산 부족으로 시민들의 발이 될 도시철도 2호선 공사조차 속절없이 미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비엔날레가 자본금에서 지출한 행사비용을 메꾸어 줄 여력이 있을까. 오죽하면 비엔날레 예산을 깎았다가 부족하다고 아우성치자 재단에 부담을 전가한 광주시가 과연 그 여력이 있을까? 만약 광주시가 재단이 사용한 행사비를 보전해 주지 않거나 못한다면 그에 대한 대책은 있는가. 만약 광주시가 자본금에서 사용한 62억 중 모두 또는 일부라도 채워주지 않거나 못할 때는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아랫돌 빼다 윗돌을 괴다 “밑 빠진 독”이 되면 그 책임을 누가 질지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광주비엔날레의 미래가 달린 돼지 저금통의 배를 가른 가장 손쉬운 경영(?)을 선택한 이는 그 책임을 피해서도, 피할 수도 없을 것이다. 설혹 그가 시장이라 해도 말이다.
▶▶필자 정준모는 미술평론가이자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KAAAI) 대표다. 동숭아트센터와 토탈미술관 큐레이터로 시작해 제1회 광주비엔날레 전문위원과 전시부장을 맡았다. 이후 1996년부터 2006년까지 국립현대미술관의 최장수 학예실장을 역임하며 근현대미술의 중요한 전시들을 기획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서울시 공예박물관 등 국내 여러 미술관 및 문화기관 설립에 중추적 역할을 한 행정가이기도 하다. 현재는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대표로서 미술품 감정및 미술비평, 저술활동을 지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