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의회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巨野, 탄핵·포퓰리즘 입법에 집착

'자제'규범 사라진 국회 폭주만 판쳐

헌법정신 성찰, 국민만 바라봐야





개원한 지 두 달 된 제22대 국회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거대 야당의 입법 폭주가 거듭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개원 두 달 만에 탄핵안 7건, 특검법 9건을 쏟아냈다. 야당은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을 취임 이틀 만에 탄핵했다. 헌법상 탄핵 소추는 직무 집행 중 중대한 헌법·법률 위반이 있어야 하는데 헌정 사상 유례없는 폭거다.

이 밖에 민주당은 이재명 전 대표 등을 수사한 검사 4명에 대한 탄핵안도 발의했다. 검사 탄핵안이 통과되면 이 전 대표에 대한 수사나 재판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국회를 이재명 재판 지연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야당은 또 ‘전 국민 25만 원 지급안(민생회복지원금법)’을 강행 처리했다. 이는 입법부가 행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헌법상 삼권분립에 위배된다. 올해 세수 펑크가 예고된 상황에서 13조 원 이상의 예산이 소요되는 법안을 처리한 것은 전형적인 포퓰리즘 입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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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 야당은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도 강행 처리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국민의힘은 불법 파업을 조장하는 법이라며 반발한다. 방송 4법, 25만 원 지원법, 노란봉투법 등 결국 폐기될 법안을 두고 ‘여당 필리버스터→야당 강행 처리→대통령 거부권→재표결’이 되풀이될 것으로 전망된다.

두 달간 민주당이 묻지 마 탄핵과 특검, 포퓰리즘 입법에 집착하는 동안 여당과 합의 처리한 민생 법안은 단 한 건도 없다. 이는 직무 유기이고 국민 기만이다. 프랑스 사상가 알렉시 드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1835년)’라는 책에서 “다수의 만능이 집행되는 신속하고 절대적인 방식은 법률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법 집행과 행정 수행도 같은 영향을 미친다”며 ‘다수의 폭정’을 경고했다.

지금 국회에서 다수의 힘으로 입법 독재와 탄핵을 밀어붙이는 거야의 행태는 이에 부합한다. 1930년대 헌법 위에 군림한 ‘히틀러 수권법’을 닮아가고 있다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다. 하버드대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 교수는 “‘상호 관용’과 ‘자제’라는 규범이 민주주의가 궤도에서 탈선하지 않게 하는 ‘가드레일’”이라고 강조한다. 이 규범이 지켜지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무너진다고 주장한다.

지금 우리 한국 국회에서는 이런 규범이 실종된 채 폭주와 배제만이 판을 친다. 그래서 한국 국회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여야가 최악의 국회에서 벗어나려면 그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며 쌓아온 오랜 합의 관행의 규범, 품격과 절제를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보들의 행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결국 의회 민주주의는 무너질 것이다.

2011년 1월 미국 연방 하원의 여야 의원들은 221년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헌법 전문을 릴레이 낭독했다. 헌법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취지였다. 우리 국회의원들도 자신들의 행위가 헌법 정신에 부합하는지 성찰하고 국가이익을 우선해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면 난장판 국회는 사라질 것이다. 더 나아가 의원들이 용기를 갖고 국민만 바라보며 책임감을 갖고 진정 국민을 대표한다면 국회가 정상화되고 민생 경제도 회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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