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라이프

SNS 빠진 아이들…'우울의 늪' 빠진다[북스&]

■불안 세대(조너선 하이트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10대 여아 4명중 1명은 우울증

5시간 이상 SNS 할땐 확률 3배

'비교기계 발달'한 여성이 치명상

가상세계 미보호 '아동기 대재편'

사용연령 만16세 이상 제한 필요

정부·기업·부모 등 안전조치를





초등학교 6학년이 갖게 된 첫 핸드폰은 지금은 사라진 큐리텔사의 ‘네오미’라는 모델이었다. 단음 벨소리의 종류를 바꿔보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지만 명함 만한 사이즈의 새하얀 핸드폰이 손 안에 들어온 순간의 감촉은 특별했다. 하지만 설렘은 잠시였다. 네오미는 어린이를 어른의 보호 밖의 세계로 24시간 이끌었다. 발신자 ‘번호없음’으로 처음 날아든 욕이 담긴 문자부터 자신이 메시지를 보내면 2분 내로 답장을 하라는 친구의 애정을 가장한 폭력적인 요구까지 밤낮 없는 ‘알림’에 노출된 것. 핸드폰이 없으면 불안했던 이유는 친구들로부터 소외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핸드폰 중독보다 컸던 데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의 이야기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소셜미디어의 숫자는 크게 늘었고 이를 매개로 하는 관계는 스마트폰 알림으로부터의 피신처를 없애버렸다. 긍정심리학의 선구적인 학자로 꼽히는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 미국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는 이 같은 소셜미디어의 문제점에 메스를 가한다. “우리는 현실 세계에서는 아이들을 과잉 보호하면서 가상 세계에서는 아이들을 과소 보호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의 신간 ‘불안 세대(The Anxious Generation)’는 지난 3월 미국에서 출판된 이후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의 연구에서 아동 청소년들의 우울증 등 정신질환은 2012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2020년 우울증을 겪는 여자 아이(12~17세) 비율은 25%에 달해 2010년 이후 145% 증가했고 남자아이의 경우 10%로 같은 기간 161% 늘었다. 여자아이의 경우 평일에 소셜 미디어에 5시간 이상 쓰는 아이가 소셜 미디어를 하지 않는 아이에 비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3배 이상 높았다.

퓨 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2011년만 해도 미국인 십대 중 스마트폰을 소유한 비율은 23%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후 커먼센스 미디어 조사에 따르면 2016년에는 십대 중 79%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의 스마트폰 보급률이 가파르게 늘어나던 이 기간 인스타그램(2010년 출시)과 틱톡(2016년 출시)은 빠르게 아동 청소년 이용자를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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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여자아이들이 소셜미디어의 활용으로 ‘치명상’을 입는 이유를 민감한 ‘비교 기계’가 더 발달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매 순간 어느 그룹 또는 무리에서 자신의 위치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는 기계의 눈금이 조금 더 촘촘히 발달해 있다는 것. 이를 테면 남자아이들의 비교 기제는 섭씨를 채택하는 온도계와 같다면 여자 아이들은 화씨를 적용하는 온도계와 같아 작은 변화도 더 미세한 눈금으로 수치화가 가능한 것이다. 여자 아이들은 필터와 보정을 적용한 타인들의 아름다운 이미지뿐만 아니라 ‘나 빼고 다 행복해보이는 이미지’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눈금 기계를 혹사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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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아이들의 공격성은 남자아이들처럼 물리적으로 표출되는 게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무너뜨리는 것을 타깃으로 하기 때문에 ‘사이버 불링(가상세계 괴롭힘)’에 더욱 취약하다. 모든 여자아이들이 ‘OO이를 제외한 우리 반 모두’라는 이름의 단체방이 생기거나 어느 날 실수 하나로 소셜미디어에서 배척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외받지 않기 위해 더 자극적이고 강하게 권위있는 또래의 행동을 모방하는 증세도 나타난다. 최근 몇년 간 독일의 정신과 의사들은 남자아이들에게 주로 발병하는 ‘틱 장애’인 ‘투레트 증후군’을 호소하는 여자아이들이 늘어난 것에 주목했다. 이들의 틱 증세는 놀랍도록 비슷했는데 특정 영상을 따라한 뒤 겪게 된 증상이었다. ‘대규모 소셜 미디어 유발 질환’의 첫 사례다. 이후에도 십대 아이들 사이에 이 같은 정신 질환 호소인들이 늘어나는 것도 이러한 동조 현상과 관련이 있다.

그렇다고 남자아이들이 안전 기지에 머물러 있는 것도 아니다. 현실 세계에서의 위험 요소를 제거하는 어른들이 가상 세계에서의 위험은 방치하면서 남자 아이들은 잠재력 자체를 잃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경제적으로 독립 가능한 20대 후반 이후에도 집 밖을 떠나지 않은 채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일본만의 히키코모리 현상으로 끝나지 않고 있다는 것.

저자는 아이들이 현실 세계에서는 위험한 경험들을 차단당하지만 가상 세계에서는 보호받지 못하는 일들이 반복되면서 ‘아동기 대재편’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Z세대가 겪는 행태는 밀레니얼 세대와도 완전히 다르다는 것. 이 때문에 그는 소셜미디어 사용 연령을 만 16세 이상으로 높이고 이에 대한 안전 장치를 정부와 테크회사에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부 소셜 미디어 회사들도 위기의식을 공유하면서 새로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소셜미디어 핀터레스트의 빌 레디 최고경영자(CEO)는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회의(올핸즈 미팅)에서 이 책을 추천하면서 모든 직원들이 이를 함께 읽을 수 있도록 했다. 레디 CEO는 “플랫폼이 십대를 위한 특별한 보호조치를 추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조적인 이야기가 충분히 와닿지 않았다면 한 아이의 하루를 생각해보자.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다르면 Z세대의 경우 하루의 스마트폰에 뜨는 알림이 192번에 달한다. 192번의 알림 중 어떤 것은 잠시 아이를 기쁘게 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알림은 아이를 지옥으로, 어떤 알림은 아이를 우울감으로 빠뜨린다. 정부와 테크회사의 탓만 할 게 아니라 부모들도 하루에 192번의 알림으로 인해 아이가 잃게 되는 기회비용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때다.


정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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