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가 우월한 여러 가지 이유 중에 하나를 들면 장기 상승에도 불구하고 상장기업 수가 오히려 줄어들면서 수급 여건이 개선되고 있다는 점도 있다. 분할 재상장 같은 행위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1996년을 정점으로 기업공개(IPO) 건수가 크게 감소했다. 이에 따라 상장 기업 수도 1996년 8090개에서 2012년에는 4102개로 급감했다. 현재는 외국기업들의 상장이 급증하면서 약 6000개 수준이다.
상장 기업 수 감소가 긍정적인 이유는 투자자들의 수급이 분산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처럼 IPO는 물론 분할 상장과 같이 공급 건수가 많으면, 기존 상장 기업에 투자돼야 할 자금들이 새로운 기업으로 분산되면서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미국 증시의 상장 기업 수가 줄어든 가장 중요한 요인은 두 가지다. 먼저 2002년 사베인-옥슬리법 이후로 상장사의 책임 부담이 크게 증가했다. 따라서 상장보다는 빅테크 기업으로의 피인수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고, 합병으로 인한 상장폐지도 빈번하다. 그 결과 빅테크 기업들이 점점 더 몸집이 커지는 절대적인 존재로 변해가고 있다.
사실 미국의 절대 강자로서 위상과 압도적인 대기업의 출현은 과거에도 수차례 있었던 지속적인 데자뷔이다. 예를 들면 1920년대 중반 전세계 차량의 80%가 미국에 있었고 록펠러는 한때 전세계 정유 생산량의 90퍼센트를 통제할 정도로 막강했다. 미국의 힘이 더 강해진 시기에는 지금처럼 특유의 고립주의로 회귀하는 경향이 있는데, 1924년의 이민법이나 1930년의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대표적 사례이다.
데자뷔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1800년대 말~1900년대 초반까지 미국 기업 전반적으로 합병 열풍이 불었다. 다양한 수직적, 수평적 결합을 통해 몸집을 크게 불렸다. 예를 들면 JP모건은 국부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기업들의 이사회에 참여하는 절대적 지위를 가지면서 주식시장의 정보를 거의 독점했다.
이 시기에 재벌들을 ‘강도 귀족’이라고 비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고 때마침 국토 개발이 종료됨으로 인한 성장의 약화가 겹치면서 사회적 불만이 커졌다. 이는 1911년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에 대한 강제 기업 분할로 이어진다. 물론 지금의 상황과 다소 다르지만, 빅테크 기업의 과도한 성장에 대해서도 사회적 경계감이 커질 것이 분명하다.
정보기술(IT) 업황은 수시로 급변하기 때문에 영원히 안전한 기업은 없다. 최근 테슬라 사례처럼 막상 변수가 발생해 주가가 하락하면 장기간 믿어왔던 성장 스토리는 순식간에 잊혀진다.
실제 미국 대표 기업들은 어떤 예외도 없이 지난 120년간 이러한 과정을 반복해 왔다. 물론 장기적인 승자는 있지만, IT 산업에서는 이를 미리 가려내기 어렵다. 마침 배당 시즌이 다가오고 있고, 국내 증시에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이 다시 화두가 될 수 밖에 없으니, 한 번쯤 눈을 이런 곳으로 돌려 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