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청론직설] “소득 3만弗인데 산업구조 2만弗 수준, 서비스업 생산성 높여야”

◆전현배 한국산업조직학회장(서강대 교수)

2010년대 생산성 저하 절반 이상 서비스업에서 기인

제조업 생산성 대비 50% 불과, OECD평균보다 낮아

서비스업 ‘규모의 경제’ 지체될수록 저성장 심화 우려

‘서비스발전법’ 통과, 자영업 재교육 등 정책조합 필요

한국산업조직학회장인 전현배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가 12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산업구조는 1만~2만 달러 시대에 머물러 있다”며 서비스업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호재 기자한국산업조직학회장인 전현배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가 12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산업구조는 1만~2만 달러 시대에 머물러 있다”며 서비스업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호재 기자




우리나라의 올해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0.2%를 기록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8일 연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2.6%에서 2.5%로 낮췄다. 미국의 경기 침체 우려, 중국의 경제 회복 지연, 중동 확전 가능성 등 대외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한국산업조직학회장을 맡고 있는 전현배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가 12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산업구조는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걸맞지 않게 1만~2만 달러 시대에 머물러 있다”며 “서비스업 분야에서 ‘규모의 경제’ 실현을 통해 생산성을 높여야 성장률 하락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서비스업 선진화는 결국 골목의 자영업자들이 임금근로자가 되는 과정”이라며 “폐업 지원, 재교육, 고용 촉진 장려금 등의 정교한 정책 조합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올해 2분기 성장률이 뒷걸음쳤다.

△2분기 성장률 하락의 요인은 순수출(총수출액-총수입액) 감소와 내수 부진이다. 내수 부문에서 민간소비뿐 아니라 건설 투자도 급감했다. 한국은행은 하반기에 민간소비의 완만한 증가와 수출 증가세 유지로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예상하지만 국내외 변수들이 많아 낙관할 수 없다. 장기적으로 볼 때 우리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내수 활성화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국내 투자 환경을 개선하고 소비 여건을 끌어올려야 한다. 소비를 살리려면 서비스 산업의 업그레이드가 이뤄져야 한다.

-우리 경제의 저성장 고착화 우려도 많다.

△현재 한국의 성장률은 선진국 평균과 유사하거나 약간 높은 수준이다. 문제는 향후 성장률이 빠르게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성장률이 앞으로 10년 정도 지나면 OECD 평균(1.7%) 이하로 떨어지고 2040년대에는 1% 미만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했다. OECD 평균 수준의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한 골든타임이 약 10년 정도 남은 셈이다. 성장률 급락을 막으려면 저성장 원인에 대한 진단이 중요한데 시기별로 차이가 있다. 2000년대에는 노동과 자본 등 요소 투입 감소가 성장률을 끌어내렸다. 2010년 이후에는 생산성 하락이 주요 요인이었다. 최근 10년간 생산성이 약 2%포인트 하락했는데 이 가운데 37%는 자본 투입 감소, 63%는 영세자영업자 증가 등 생산성 관련 요인에 따른 것이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2010년 이후 성장률 하락은 우리나라 산업구조의 취약성에 기인한다. 대표적으로 자영업, 더 넓게 보면 서비스업의 경쟁력이 떨어진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걸맞지 않게 1만~2만 달러 시대의 산업구조에 머물러 있다. 문제의 핵심은 서비스업의 생산성인데 이에 대한 근본적 해결을 도외시하고 단기적인 대응책만 되풀이하고 있다. 앞으로 국가 역량과 예산의 많은 부분을 산업구조 개선에 집중해야 한다. 정부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는 듯한데 아직 정책적으로 큰 발을 내딛지는 못하고 있다.



-지금 우리 서비스업은 어떤 상태인가.

△일반적으로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서비스업 비중이 커진다. 우리나라도 서비스업이 앞으로 제조업에 비해 더 빨리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서비스업은 제조업에 비해 생산성이 낮기 때문에 선진 경제로 다가갈수록 성장률은 하락한다. 현재 한국의 제조업 대비 서비스업 생산성은 50% 수준에 불과하다. OECD 평균인 80%에 비해 훨씬 낮다. 영세 자영업자가 많은 도소매, 음식 숙박, 개인서비스업의 생산성이 나아지지 않고 있는 영향이 크다. 일반적으로 사업체 규모가 클수록 생산성이 높다. 한국 중소기업의 생산성이 낮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같은 규모의 한국과 OECD 중소기업의 생산성은 유사하다. 문제는 10인 미만 소상공인 비중이 OECD 평균보다 10%포인트 이상 높고 이들 대부분이 생산성이 낮은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다.

-낮은 생산성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생산성이 낮은 서비스업의 확대는 성장률 하락의 주요 원인이 될 수 있다. 특히 청년들에게는 양질의 일자리 부족이라는 문제로 다가온다. 일자리 질 악화의 대부분이 제조업보다는 서비스업에서 발생했다. 2010년 이후 생산성 저하의 절반 이상이 영세 서비스업 확산에 따른 것이었다. 이 같은 난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제조업 생산성을 높인다고 하더라도 성장률 하락을 막을 수 없다. 서비스업의 선진화가 늦어질수록 저성장이 심화할 것이다. 가계의 실질 소득 하락과 국가 재정 악화 등 많은 부작용이 우려된다.

-서비스업을 선진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제조업의 생산성 향상은 주로 기존 기업의 기술 혁신을 통해 일어난다. 하지만 서비스업에서는 생산성이 높은 새로운 사업체는 진입하고 생산성이 낮은 업체는 퇴출하는 ‘창조적 파괴’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 일반적으로 서비스업 생산성이 떨어지는 나라는 고생산성 기업의 시장 진입을 막는 규제 정책을 시행하는 나라들이다. 대표적인 곳이 한국과 이탈리아다. 만약 새로 진입하는 기업이 기존 기업과 비슷한 생산성이라면 과당 경쟁만 유발한다. 규모가 크고 생산성이 높은 업체의 진입이 막혀 생산성이 낮은 업체만 지속적으로 시장에 들어와 무한 경쟁을 벌이게 된다. 이런 경우 경쟁이 활성화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생산성은 정체된 ‘회전문 현상’만 나타날 뿐이다. 가장 안 좋은 상황이다. 서비스 산업 생산성을 높이려면 규모화, 즉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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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화’가 안 되는 이유는.

△그동안 서비스업의 규모화 주장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하지만 골목 상권을 대기업이 침탈하는 것으로 인식돼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중소기업 적합 업종 지정 등 규모화를 막는 쪽으로 정책이 추진돼왔다. 하지만 문제는 대기업이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디지털 전환을 하지 못하는 소상공인은 더 이상 생존과 성장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서비스업을 규모화하는, 즉 10인 미만의 사업체 비중을 줄이는 정책이 필요하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면 생산성이 높은 곳으로 재원이 재배분되고 전체 산업의 생산성이 올라간다.

-외국의 경우는 어떤가.

△미국 메릴랜드대의 연구에 따르면1990년대 미국 유통서비스업 생산성 제고의 대부분은 생산성이 높은 월마트와 같은 대형 업체의 진입과 생산성이 낮은 기업의 퇴출을 통해 이뤄졌다. 새로운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한 수요 예측과 재고 관리 능력이 뛰어난 월마트가 등장하자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존 업체들은 시장에서 철수했다. 소규모 점포들도 신규 진입을 시도할 엄두를 못냈다. 창조적 파괴를 통한 성장은 첨단기술 분야나 제조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치킨집 등 모든 산업에서 작동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규모의 경제’ 달성은 쉽지 않은 과제다.

△‘규모화’는 단순히 점포의 크기가 커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서비스업에서는 수요가 지리적으로 분산돼 있는 점포를 체인화해야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체인화는 프랜차이즈와 직영점의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자영업이고, 직영점은 임금근로자로 이뤄져 있다. 직영점을 늘리기 위해서는 대규모 자본을 동원할 수 있는 기업의 참여가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의 체인화 정책은 프랜차이즈화를 가속화해 자영업을 오히려 육성하는 쪽으로 진행돼 우리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심화시켰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서비스업 선진화를 위해 자영업자들의 폐업 지원, 재교육, 고용 촉진 장려금 등 다양한 정책 조합이 요구된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소상공인 자영업자 대책에 처음으로 자영업자의 재창업뿐 아니라 임금근로자로의 전환을 촉진하는 정책이 포함된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영업자들이 또 다른 작은 업체의 종사자가 아닌 규모가 큰 업체의 직원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규모가 큰 업체 자체가 없다면 고용 안정성과 생산성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자영업자의 재취업 정책은 서비스업 규모화와 보조를 맞춰나가야 한다.

-서비스업 생산성 향상이 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제조업 대비 서비스업 생산성을 OECD 평균 수준으로 향상시키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현재보다 60% 정도 상승할 수 있다. 3만 달러대에서 5만 달러 수준, 즉 독일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다. 향후 약 30년 동안 이 목표를 달성하면 잠재 성장률도 연간 약 0.7~1%포인트 높일 수 있다. 자영업 구조 개선을 포함해 서비스 선진화를 위한 산업구조 개혁을 서둘러야 할 때다. 이와 함께 노동·교육 개혁, 규제 혁파 등이 보완적으로 작용해야 지속적인 성장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일자리 축소에 대한 우려가 많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AI·로봇을 활용해 새로운 수요를 만들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제조업에서만 ‘오프쇼어링(생산기지 해외 이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서비스업에서도 오프쇼어링이 이뤄지고 있고 이는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새로운 서비스와 수요가 계속 생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정부와 정치권의 역할이다. 그런 점에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

◆He is…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시립대 조교수를 거쳐 2006년부터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응용경제학회 회장과 한국경제학회 이사를 역임했으며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올해 3월 한국산업조직학회 회장에 취임했다.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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