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 화재 이후 ‘전기차 공포증(포비아)’이 확산되는 가운데 정부가 12일 ‘전기차 및 지하 충전소 화재 안전 관계 부처 회의’를 열었다. 국무조정실장이 주관하는 관계 부처 차관회의에 앞서 환경부 차관이 국토교통부·산업통상자원부·소방청 등의 국·과장들과 대책을 조율했다. 당국자들은 이 자리에서 전기차 배터리 실명제 실시와 지상 충전 시설 설치에 대한 인센티브 지급 방안 등을 논의했다. 외국 전기차 회사들이 영업 기밀을 내세워 배터리 제조사 공개에 난색을 표하고 있으나 소비자에 대한 구매보조금 차등 지급을 통해 설득하겠다는 것이다. 또 배터리 화재의 주요 요인으로 꼽히는 과충전 방지와 함께 지하주차장 스프링클러 설치 확대 방안 등도 다뤘다.
하지만 청라 화재 열흘이 넘어서야 정부가 관련 기관 회의를 열고 9월 초 대책을 발표한다고 하니 늑장 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청라 화재로 인해 주민 23명이 불화수소 등 유독가스를 마셔 병원에 실려가고 차량 87대가 불에 타는 등 대형 피해가 발생했으나 대책 마련이 너무 늦다는 것이다. 이번 화재의 파장이 주민 간 주차 갈등으로 번지고 전기차 산업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으므로 정부가 비상한 각오로 임해야 한다. 국내 전기차 화재가 2021년 24건, 2022년 43건, 지난해 72건 등 급증세를 보이고 있지만 근본적인 안전 대책 마련은 늦어지고 있다. 정부가 전기차 과충전 방지를 위해 전력선통신(PLC) 모뎀 부착 완속 충전기의 보급에 나선 게 올 초부터이고, 정부가 보증하는 배터리 인증제 실시는 내년 2월에나 이뤄진다.
전기차 화재 대책을 마련해 국민의 불안감을 잠재우면서도 배터리 산업의 혁신을 촉진해야 할 시점이다. 정부는 전기차 화재가 발생할 경우 효과적인 대응을 위해 매뉴얼과 시스템 개선에 나서고 전기차 소유자들에 대한 안전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배터리 기업은 철저한 품질 관리와 안전 검증을 하면서 화재에 강한 차세대 배터리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정부와 업계, 과학기술계가 실질적인 전기차 화재 방지책은 물론 지속 가능한 전기차 산업 성장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