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북스&] 내 몸에 들어온 '타인의 DNA' 면역혁명일까 정체성 혼란일까

■마이크로 키메리즘

리즈 바르네우 지음, 플루토 펴냄





약 20 년전 과학계는 장내 미생물 무리, ‘마이크로바이옴’을 발견했다. 당시 과학자들은 자기 몸의 세포보다 더 많은 수의 미생물이 장에 들어와 살고 있고, 그것이 자신의 건강과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인간의 세포에 새겨진 DNA는 고유하다는 철옹성 같은 믿음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최근 과학계에서는 마이크로바이옴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파격적인 연구 결과가 논의되고 있다. 바로 ‘마이크로키메리즘’이다. 프랑스의 과학 저널리스트 리즈 바르네우가 쓴 ‘마이크로 키메리즘-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타인의 DNA’는 아직은 대중에게 낯선 과학 이론 ‘마이크로키메리즘’을 수많은 사례를 들어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하는 과학 교양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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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키메리즘’ 이론에 따르면 우리의 몸 속에는 ‘타자의 세포’가 존재할 수 있다. 외래 세포는 산모에서 태아로, 태아에서 산모로 이동할 뿐 아니라, 태아와 같은 시기에 수정 됐지만 순식간에 사라진 형제 자매나 쌍둥이 배아가 남긴 흔적을 통해 이동하기도 한다. 과학자들이 밝힌 사례 중에는 장기 기증이나 성관계를 통해 넘어온 외부 세포도 있다. 이 같은 세포의 이동은 고유한 유전자 체계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믿기 힘들 만큼 특별한 인간 유형을 창조한다.

저자는 1년 반 이상 세계 각지에서 몸 속에 들어온 외래 세포로 인해 큰 혼란을 겪은 이들의 사연을 취재해 소개하는데, 이 중 ‘두 가지 혈액형을 가진 여성’의 사연은 특히 흥미롭다. 1953년 영국 북부 병원의 의료진은 헌혈을 위해 찾아온 한 여성이 O형과 A형 두 가지 혈액형을 모두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연구에 따르면 이 여성의 혈액 속에 존재하는 A형 혈액형은 3살 때 죽은 쌍둥이 동생에게서 유래했다. 저자는 “‘배아가 발달하면서 세포가 통합될 수 있고, 이 시기 면역체계는 자기와 비자기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과학자들의 말을 인용해 발달 중 일찍 침입한 타자의 세포가 나의 몸 속에 내면화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마이크로 키메리즘’은 현재진행형 이론이지만, 이미 과학계에서 ‘완성형’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여겨지고 있는 듯하다. 책의 감수를 맡은 신의철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교수는 마이크로키메리즘의 발견 덕분에 새로운 면역학이 시대가 열렸다’며 설렘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설렘만큼 두려움도 크다. 과학자들의 주장처럼 만약 우리의 몸 속에 두 개 이상의 유전적 정체성이 존재할 수 있다면, 친자확인이나 용의자 확인처럼 DNA를 이용해 누군가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시스템이 혼란에 빠질 수 있는 것 아닌가. 과연 ‘나’란 존재를 인간 세포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마이크로 키메리즘’ 연구가 깊어질수록 정체성에 대한 인류의 고민도 깊어질 것이다.


서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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