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지난 코로나19 소식이 올해 여름 직장인들 사이에서 화두다. 지난해 엔데믹을 선언한 이후 처음으로 코로나19가 재유행하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방역 지침마저 사라진 상황에서 코로나19 확진이 병가까지 내야 할 일인 지를 두고 엇갈린 반응들이 나오면서 전 세계 직장인들이 깊은 고민에 빠졌다. 증상이 '독감'과 유사하다는 인식이 팽배하면서 더 이상 코로나19 감염은 직장 내에서 ‘열외’ 사유로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코로나19 재유행 시기가 여름 휴가철과 겹친 것도 문제다. 사내에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보니 대다수 직장인들은 병가를 낼 경우 자연스레 휴가는 포기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는 비단 코로나19라는 질병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팬데믹을 거치며 웬만한 질병은 가볍게 여기는 문화가 자리잡게 됐고, 이러한 문제는 '아프면 쉴 권리'로 논란으로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재택근무 확산으로 아파도 쉬지 못하는 '프레젠티즘(Presenteeism)'이 만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시 고개 드는 코로나19 공포…당분간 확산세 전망
최근 코로나19 환자가 폭증하면서 치료제와 진단키트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코로나19는 지난해 6월 엔데믹 선언으로 사람들의 관심에서 잊혀진 지 오래이지만 여전히 끊임없는 변이를 통해 감염을 유발시키고 있다. 질병청은 지난 8월 둘째 주 주간 확진자 규모를 지난해 여름(35만명)의 절반 수준인 17만 명 정도로 추산했다. 사실상 코로나19 확진자 폭증 상태다. 코로나19 확진자 증가세는 국내 뿐만 아니라 일본, 미국, 영국 등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다.
전 세계 보건당국은 대체로 당분간 확진자 수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지난해 이후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졌고, 올 여름 폭염으로 확진 이후에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모든 학교들이 일제히 개학을 앞두고 있다는 점 등이 이유로 꼽힌다. 코로나19에 대한 경각심도 크게 낮아졌다. 이럴 때일수록 국가나 단체에서 코로나19 확진자에 대한 명확한 지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쉬어야 할까, 버텨야 할까…치료부터 격리까지 스스로 판단해야 게 뉴 노멀
올해 여름 직장인들은 커다란 고민에 빠졌다. 엔데믹 선언 이후 코로나19에 확진됐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가 불확실해졌기 때문이다. 전염을 막기 위해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지, 격리기간은 얼마나 가져야 하는지, 직장에 보고를 해야 하는지, 휴가를 써야 하는지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는 곳은 아무데도 없다.
가장 힘든 부분은 신체적 고통이 아닌 그래도 일은 해야 한다는 압박에 따른 정신적 고통이다. 코로나19의 전염성은 여전하지만 대부분의 직장은 근로자들에게 명확한 방침을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계절성 질병인 감기와 마찬가지로 증상에 따라 병가를 내고 자가격리를 할지, 아니면 감염사실을 알리지 않고 업무에 매진할지 알아서 판단해 대처하라는 의미다.
여름 휴가 전후로 코로나19가 의심되거나 확진 판정을 받더라도 휴가를 통째로 날려버릴까 아파도 쉬지 못하고 버티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현상은 특정 국가나 직종이 아닌 전 세계 모든 직장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분위기는 코로나19 뿐만 아니라 여러 질병으로 아파도 마음놓고 쉴 수 없는 환경이 굳어지게 한다고 전문가들은 전하고 있다. 영국 고용연구소(IES)의 선임 연구원인 샐리 윌슨은 "많은 직장들이 여전히 근로자들이 질병을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그리고 언제 일할 수 있다고 느껴야 하는 지에 대한 뉴 노멀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택근무 확산이 불러온 후폭풍…'아프면 쉴 권리'마저 위협
재택근무 확산은 코로나19 등 각종 질병과 마주한 직장인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과거처럼 매일 회사로 출근을 해야하는 상황이라면 모르겠지만 재택근무와 하이브리드 근무(재택·출근 병행)가 활성화된 상황에서 휴가를 내야 할 만큼 아픈 지에 대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혼자서 끙끙 앓다가 오히려 증상을 더 악화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최근 코로나19 확진자들의 증상이 쉽게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미한 경우가 많은데다 적극적으로 검사를 받지 않으면서 증상 악화로 이어지는 사례마저 늘고 있다. 감염자들이 의도적으로 직장에 알리지 않는 사례도 늘면서 직장 내에서도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게 되고, 병가를 내고 쉬어야 할 지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인사 및 인력 개발을 위한 전문 기관인 영국 공인인력개발연구소(CIPD)에 따르면 지난해 5000명 이상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절반 이상이 '몸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업무를 수행했다'고 답했다. 이런 결정은 직장 상사나 회사 규정 때문이 아닌 스스로의 결정이었다고 CIPD는 설명했다. CIPD의 인사 및 혁신 책임자인 아만다 애로우스미스는 "팬데믹 기간에는 명확한 지침이 있었다면 이제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며 "병가인지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사람들이 더 오랫동안 아플 위험이 있다"고 전했다.
‘프리젠티즘’의 확산…결국엔 기업도 손해
아파도 말 못하고 쉬쉬하는 분위기는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도 마찬가지다. 아파도 출근하는 일종의 '프레젠티즘'이 만연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리젠티즘은 질병을 앓고 있거나 심한 업무 스트레스와 피로로 정신적·신체적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회사에 출근하는 해 업무 수행 능력이 저하되는 현상을 말한다. 프리젠티즘은 기업의 생산성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보험료 등 비용 증가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발 더 나아가 프레젠티즘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회사의 실적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는 연구도 있다. 미국 방산업체 록히드 마틴이 직원 1600명을 대상으로 질병이 생산성을 얼마나 감소시키는지 조사한 결과, 계절성 알레르기 비염이나 독감 같은 비교적 가벼운 계절성 질병에도 업무 생산성이 각각 4.1%, 4.7% 저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 프리젠티즘으로 인한 총 비용이 연간 1500억 달러(약 203조5500억 원)에 달한다는 미국 의료서비스 업체 가이징거 헬스 시스템의 연구 결과도 있다.
프리젠티즘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회사가 직원에게 투자하는 것만큼 직원이 이익을 얻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이익을 얻는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건강 및 생산성 관리 연구소 숀 설리번 연구원은 "직원 건강을 더 잘 관리하면 생산성이 향상돼 경쟁력 있는 비즈니스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전했다.
<편집자주> 우리는 하루의 많은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고 ‘일의 기쁨과 실망’ 속에서 몸부림치곤 합니다. 그리고 이는 옆 나라와 옆의 옆 나라 직장인도 매한가지일 겁니다. 먹고 살기 위해선 결코 피할 수 없는 ‘일 하는 삶’에 대해 세계의 직장인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요. 앞으로 매주 일요일 ‘일당백(일요일엔 당신이 궁금한 100가지 일 이야기)’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글로벌 미생들의 관심사를 다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