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기자의 눈] 절박함 속에서 나온 세계 1등의 꿈

류석 IT부 기자





1998년 12월 미국 1, 2위 석유 기업인 엑손과 모빌은 전격적으로 합병을 발표했다. 합병 비율은 1대1.32로 엑손이 모빌을 흡수하는 형태였다. 기업가치가 수십조 원에 달하는 글로벌 공룡 기업인 엑손과 모빌이 합병을 결정한 것은 다른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 미국 석유회사들은 경제 불황과 유가 하락으로 미래 성장 전망이 어두웠던 시기다. 두 회사는 운영 효율성 강화와 비용 절감이 절실했다. 이 합병으로 탄생한 엑손모빌은 단숨에 네덜란드의 ‘로열더치셸(현 셸)’을 제치고 글로벌 1위 기업으로 올라섰다. 또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 확대와 신규 석유 탐사 활동을 강화해 지속 성장을 위한 기반은 마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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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 대표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인 리벨리온과 SK텔레콤(017670) 자회사인 사피온코리아의 합병 추진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두 회사가 합병을 결정한 것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크게 작용했다. 각종 비용을 절감하는 것은 물론 기존 분산돼 있던 우수 인재들을 한곳으로 모아 힘을 합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컸다. 이러한 양사의 공통된 인식 덕분이었을까. 가장 큰 난관으로 예상됐던 합병 비율 산정도 큰 잡음 없이 두 달 만에 마무리 지었다.

앞으로 출범할 합병 법인의 목표는 명확하다. 전 세계 1위 기업인 엔비디아를 잡겠다는 것이다. 이번 합병을 통해 리벨리온은 글로벌 1위 AI 반도체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SK텔레콤을 포함한 SK그룹 계열사, KT(030200) 등과도 공고한 협력 체계를 구축했다는 점에서다. 나아가서는 삼성전자(005930)를 비롯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도 예상된다.

이번 리벨리온과 사피온의 합병 사례가 국내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먼저 지연되고 있는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 작업도 더욱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 넷플릭스 중심의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기 때문이다. 또 익스피디아 등 해외 대형 OTA(온라인 여행사)들이 장악한 글로벌 여행·숙박 시장에서도 야놀자와 여기어때가 힘을 합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리벨리온과 사피온이 가진 절박함과 세계 1등에 대한 꿈이 국내 다른 기업들에도 이식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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