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역사속 하루] 몽골의 포위에 중건한 만리장성

조영헌 고려대 역사교육학과 교수






오늘날 중국 베이징에 가면 보게 되는 만리장성 라인은 진나라, 한나라의 장성이 아니라 대부분 명나라 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왜 명나라 시대에 장성이 대대적으로 건립됐고 정확히 언제쯤 지어진 성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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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시기에 장성을 대대적으로 건립한 것은 이전 왕조의 지배층이었던 몽골족을 완전히 없애지 못했기 때문이다. 몽골 초원으로 달아난 몽골 세력은 이후 여러 세력으로 분열된 시기에는 명에 큰 위협이 되지 않았지만 강력한 지도자의 영도력 아래 결집이 될 때마다 명의 변경을 괴롭혔다. 몽골이 원했던 것은 명과의 교역이었다.

결정적으로 1550년 음력 8월 20일(양력 10월 10일) 몽골의 새로운 지도자 알탄 칸이 군대를 이끌고 변경의 수비 라인을 뚫고 남하해 베이징 인근 퉁저우까지 진격한 후 다시 700여 기마병을 이끌고 베이징을 포위했다. 경술년(庚戌年, 1550)에 발생한 큰 변란이기에 ‘경술지변’이라 부른다.

패닉에 빠진 베이징의 쌀 가격은 급등했고 다급해진 황제 가정제(嘉靖帝)는 알탄 칸이 요청한 교역, 즉 변경의 거래 시장 개설을 허가했다. 당시 기강이 무너진 명의 군대는 오합지졸에 가까웠다. 가정제는 일시적인 위기를 모면한 후 다시 변경의 시장을 폐쇄하는 대신 장성을 새롭게 중건하자는 관료들의 의견을 따랐다. 그래서 북변의 긴 장성 라인이 서쪽의 가욕관에서 동쪽의 산해관까지 벽돌로 중건됐다. 100여년 전부터 지어진 성벽은 흙으로 지어졌기에 침식이 쉽게 되고 약했지만 경술지변 이후에는 벽돌과 돌로 튼튼하게 중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명은 장성을 튼튼하게 재건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동북쪽에서 내려온 만주군을 막지 못하고 멸망했다. 만리장성은 명을 지켜주지 못했다. 다만 벽돌로 지어진 장성만 오래 살아남아 지금까지도 유명 관광지로 활용되고 있다. 만리장성을 관광하게 된다면 성벽에 올라 약 500년 전 알탄 칸의 베이징 포위 사건을 기억해 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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