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에 의한 인류 절멸은 과학소설(SF)에 불과합니다. 언젠가는 ‘파괴적인 AI’가 나타날 수도 있겠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도리어 이런 ‘판타지스러운’ 우려가 현재 AI가 초래하는 실질적 피해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제임스 랜데이 미국 스탠퍼드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겸 인간중심인공지능연구소(HAI) 공동 소장은 최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AI로 인한 지구 종말이라는 낮은 가능성도 누군가에게는 연구할 가치가 있지만 우리의 관심 대부분은 당면 과제인 ‘4D 문제’ 해결에 집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극단적 상황에 대한 공포심이 외려 눈앞에 닥친 문제를 가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랜데이 교수가 우려하는 4D 문제는 딥페이크(Deep fake), 허위 정보(Disinformation), 차별(Discrimination), 일자리 대체(Displacement of Jobs)를 뜻한다. AI로 생성된 딥페이크와 허위 정보는 이미 광범위한 정치·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랜데이 교수가 말하는 차별은 인종·성별·세대 등에 대한 편견을 학습한 AI가 정치·경제 등 중요 결정을 내리는 데 오용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언급한 일자리 대체는 “잠재적 문제”라면서도 “상업 예술과 글쓰기 분야에서는 이미 어느 정도 벌어지고 있을지 모른다”고 봤다.
AI의 ‘현재’에 집중하는 랜데이 교수는 AI가 폭발적으로 발전해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특이점(Singularity)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대규모언어모델(LLM)은 인간 지능의 극히 일부만을 나타낼 수 있어 완전히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지 않는다면 특이점 발생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했다. 특이점 도래 시기를 제시하는 미래학자들에 대해서도 “2045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있다면 엄청난 부자가 돼 있을 것”이라며 “10년 이상 미래에 대한 예측은 회의적”이라고 지적했다.
인간컴퓨터인터페이스(HCI) 분야 권위자인 랜데이 교수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뇌신경과학 스타트업 뉴럴링크가 이끄는 뇌 임플란트 삽입 기술에 대해서도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비쳤다. 그는 “몸이 마비된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훌륭한 기술이지만 뇌에 무언가를 삽입하는 일은 매우 위험해 수십 년 내 주류 기술이 될 가능성은 적다”고 봤다.
랜데이 교수가 페이페이 리 교수와 공동 소장을 맡고 있는 스탠퍼드대 HAI는 글로벌 AI 연구의 선두 기관 중 하나다. HAI는 이름처럼 ‘인간 중심 AI’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랜데이 교수는 이에 관해 “AI 설계 초기부터 법률·의학·환경·사회과학·디자인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함께해 향후 AI가 사회 전체에 적용되는 시점에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연구”라고 설명했다.
인간 중심 AI가 가져올 긍정적인 변혁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특히 헬스케어와 교육 분야에서 기회가 크다고 봤다. 랜데이 교수는 “한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고 AI를 활용한 노인 간병이 사회 전체의 건강과 경제에 매우 중요한 문제로 떠오를 것”이라며 “노인뿐 아니라 간병인 또한 AI를 통해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AI 활용에 따른 혼란이 큰 교육 분야에서도 장기적으로는 더 나은 방향으로 갈 것이라며 낙관론을 폈다. 그는 “당분간 혼란스럽겠지만 10년 후 돌아보면 과거보다 더 나은 방식의 교육이 이뤄지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했다. AI 시대의 도래로 단순 암기에 의존한 현재의 공장식 ‘20세기 교육’이 종말을 맞고 인간 각각의 개성과 잠재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