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국내 투자자들이 미국 기업으로만 구성된 배당 상장지수펀드(ETF)를 국내 배당 ETF보다 네 배 이상 많은 1조 원 가까이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밸류업을 통해 국내 상장사의 배당을 독려하고 있지만 이미 안정적인 주주 환원에 나서고 있는 미국 기업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ETF 투자로 쏠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3일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들어 개인투자자는 미래에셋·삼성·신한·한국투자신탁운용의 미국배당다우존스 ETF를 총 9350억 원어치 사들였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미국배당다우존스 ETF’를 6609억 원어치 순매수했고 신한운용과 한국투자신탁운용의 미국배당다우존스 ETF에도 각각 1219억 원, 1017억 원의 매수세가 유입됐다.
반면 개인은 올 들어 커버드콜 전략을 제외한 국내 배당 ETF 14개 상품에 대해서는 총 2066억 원어치를 순매수하는 데 그쳤다. 자산운용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자본 이익을 겨냥한 투자뿐만 아니라 배당 관련 ETF도 미국 투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며 “배당 ETF도 미국에 투자하는 ETF가 대표 상품으로 자리 잡으면서 업계의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고 말했다.
배당 투자를 원하는 투자자들이 한국이 아닌 미국 투자 ETF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는 데는 그만큼 미국의 주주 환원이 더 믿을 만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배당다우존스 ETF는 ‘슈드’라고 불리는 미국의 대표적 배당 ETF인 ‘SCHD ETF(Schwab US Dividend Equity ETF)’의 한국판이다. ‘슈드’와 마찬가지로 다우존스미국배당100지수를 추종하는데 이 지수는 배당을 10년간 지속한 미국 상장사 중 잉여 현금 흐름, 자기자본이익률(ROE), 배당수익률 등의 지표를 토대로 상위 100개 종목을 선별해 투자한다. ‘ACE 미국배당다우존스 ETF’의 경우 매달 평균 0.49%의 배당금을 지급해 최근 1년간 3.82%의 배당을 투자자들에게 돌려줬다.
아울러 금융·증권 등의 업종만 고배당주로 묶이는 한국과 달리 방산·바이오·식품 등 다양한 업종으로 분산투자가 가능하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김승현 한국투자신탁운용 ETF컨설팅담당은 “미국은 자본시장의 역사가 길고 그만큼 배당주 투자가 활성화돼 있으며 다양한 업종으로 분산투자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미국 배당주는 안정적인 배당을 줄 뿐 아니라 주가 상승에 따른 자본 차익을 노릴 수 있는 점 역시 국내 배당 투자자들의 구미를 당기는 요인이다. 실제 미국배당다우존스 ETF가 가장 많은 비중으로 편입하고 있는 방산 업체 록히드마틴의 주가는 10년 전보다 4배 가까이 오른 상태다. 안정적인 배당에 더해 장기 투자할 경우 꾸준히 우상향하는 미국 주식시장의 특성상 자본 차익까지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밸류업 프로그램에 속도가 나지 않고 있는 점도 배당 투자자들의 시선을 미국으로 돌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국내 상장사 2500여 개 중 지금까지 밸류업 계획(예고 공시 포함)을 낸 기업은 17개사에 불과하다.
미국 배당 ETF의 열풍이 지속되자 국내 자산운용사들 사이의 경쟁도 격화하는 양상이다. 처음으로 미국배당다우존스 ETF를 2021년에 출시한 곳은 한국투자신탁운용이다. 이후 신한·미래에셋이 유사한 상품을 내놓았고 삼성자산운용은 이달 13일 신상품을 출시했다.
운용사들은 특히 배당금 지급일을 다변화하고 있다. 기존에는 매달 말일을 기준으로 월배당금이 지급됐는데 삼성자산운용은 매달 15일을 지급일로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