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이 28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제안한 ‘2026학년도 의대 증원 유예안’에 대해 “의대 증원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라며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쐐기를 박았다. 국민의힘은 전공의 집단 이탈 등에 따른 의료 공백 대응책을 계속 숙의하며 대통령실과 적잖은 입장 차이를 드러냈다. 의료 개혁을 놓고 당정이 충돌하는 양상에 대통령실은 30일로 예정된 윤석열 대통령과 한 대표 등 여당 지도부의 만찬을 추석 이후로 전격 연기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의대 정원은 올 4월 말 대학별로 배정돼 공표했고 잉크도 마르기 전에 다시 정원을 논의하고 유예한다면 학생이나 학부모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육의 질을 담보하기 위해 2026학년도를 거론하는데 오히려 전공의들이 나가 있는 내년이 더 큰 문제”라며 “증원 규모에 대해 의료계와 타협으로 숫자를 정해서는 안 된다. 반발하니 유예한다는 것은 답이 아니다”라고 했다.
대통령실은 이에 앞서 오전에도 의료 개혁에 대한 정부 입장에 전혀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의료 개혁의 최전선에 있는 박민수 보건복지부 차관 교체에 대해서도 “전혀 검토한 바 없다”고 일축했다.
대통령실은 의료 개혁이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추진하는 지방 시대와도 맞닿아 있는 핵심 과제인 만큼 양보는 없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국민 생명과 건강이 직결되는 사안에 굴복한다면 정상적 나라라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단언했다.
앞서 한 대표는 25일 고위 당정협의회 후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2026학년도 의대 증원을 일단 동결하면 이 문제가 좀 더 쉽게 풀릴 것 같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의정 갈등에 대한 대통령실과 여당 지도부 간 입장 차이는 당정 갈등을 넘어 당내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된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30일 만찬을 함께할 예정이었지만 추석 이후로 연기됐다. 한 대표가 30일 윤 대통령을 만나면 의대 증원 유예 카드를 재차 꺼낼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 바 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추석을 앞두고 당정이 모여 밥 먹는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민생 대책을 고민하는 모습이 우선”이라고 연기 배경을 설명했다.
한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당 의원들과 만난 후 ‘의정 갈등이 당정 갈등으로 확대된다’는 우려에 대해 “국가의 임무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이라며 “어떤 것이 정답인지 그것만 생각하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대통령실이 만찬을 연기한 데 대해 ‘사전 통보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제가 이야기 들은 것은 없다”며 불쾌한 뜻을 내비쳤다.
친한계인 장동혁 수석최고위원은 “(당정 간) 갈등 상황처럼 보여지더라도 이를 최우선으로 생각해 당이든 대통령실이든 힘을 모아야 한다”며 한 대표를 지원했다. 신지호 전략기획부총장은 이날 한 종편의 유튜브 채널에서 대통령실이 의료 공백 문제에 안이하다고 지적하며 “거의 달나라 수준의 상황 인식”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추경호 원내대표를 주축으로 한 원내 지도부는 용산의 방침을 지지하며 한 대표와 미묘한 입장 차를 보였다. 추 원내대표는 “의료 개혁은 흔들림 없이 진행돼야 한다는 정부의 추진 방침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당도 함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