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2035년 목표치 예측불허…기업 허리 휜다

[헌재, 탄소중립법 헌법 불합치]

2030년 NDC 40%도 버거운데

2050년까지 감축량 설정해야

섣불리 목표강화땐 부담 눈덩이

철강·제조업 등 산업계 직격탄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9일 헌법소원·위헌법률 심판이 열린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입장해 착석하고 있다. 연합뉴스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9일 헌법소원·위헌법률 심판이 열린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입장해 착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법재판소가 29일 “2031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량을 설정하지 않은 정부의 정책은 국민의 기본권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한다”며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의 이번 결정으로 정부는 2050년까지의 감축 목표를 제시해야 할 상황에 놓였는데 섣부른 목표 설정으로 수조 원 이상의 감축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된다. 철강 분야 등 산업계의 부담이 현실화하고 이에 따른 정부의 지원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헌재는 이날 청소년·시민단체·영유아 등이 제기한 헌법소원 4건에서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탄소중립기본법 8조 1항에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20년 3월 청소년 환경 단체 등이 국내 최초의 기후 소송을 낸 지 4년 5개월 만으로 아시아 최초로 나온 결정이다. 이어 2026년 2월 28일까지 관련 조항을 개정하도록 했다. 헌재는 이날 결정문에서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1항에서는 2030년까지의 감축 목표 비율만 정하고 2031년부터 2049년까지 19년간의 감축 목표에 관해서는 어떤 형태의 정량적인 기준도 제시하지 않았다”며 “2050년 탄소 중립의 목표 시점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감축을 실효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장치가 없으므로 이는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는 방식으로 감축 목표를 규율한 것으로 기후위기라는 위험 상황에 상응하는 보호 조치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성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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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판단의 요지는 정부가 ‘과소 보호 금지’ 원칙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과소 보호 금지 원칙은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번 소송처럼 권리의 침해가 아닌 보호를 다투는 사건에서 주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다만 헌재는 재판관 전원 일치로 감축 비율을 40%로 규정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시행령’ 제3조 1항에 대한 심판 청구를 기각했다. 아울러 재판관 4대5 의견으로 정부의 ‘제1차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 중 2023~2030년 부문·연도별 배출·흡수량 목표치를 설정한 ‘중장기 감축 목표’ 가운데 부문·연도별 감축 목표 부분에 대한 심판 청구도 기각했다.

정부는 이번 결정으로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는 40%로 두되 2050년 넷제로에 이르기까지 목표 달성을 위한 이행 경로를 수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주무 부처인 환경부는 헌재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후속 조치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냈다. 당장 국제 규약으로 5년마다 갱신해야 하는 NDC 설정 목표를 도전적으로 제시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정부는 연내 2035년 NDC 설정 작업 초안을 발표하고 내년에 유엔기후변화협약에 제출할 예정이다. 2030년 감축 목표치 40%도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경제계와 학계의 지적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헌재의 결정에 따라 2035년 감축 목표가 강화될 경우 기업과 정부의 부담은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독일 헌법재판소 결과 이후 강화된 독일 NDC 목표치와 같은 급진적인 상향을 점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실제 독일은 2021년 “미래 세대에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넘기는 2030 NDC는 위헌”이라는 헌재 결정에 따라 2030 NDC를 1990년대 대비 40%에서 65%까지 올려잡았다. 독일은 또 기존 법에는 없던 2040년 감축 목표를 신설해 88%로 명시하고 2050년에는 탄소 중립을 넘어 ‘음(negative)’의 온실가스 배출을 달성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아울러 목표 상향으로 타격이 예상되는 철강 등의 산업에 대해 최소 50억 유로(7조 4000억 원)를 추가 지원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의 부담이 커지면서 정부의 예산 지원도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2050년까지 도전적인 목표를 설정한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실현될 가능성은 미지수이다. 실제 2030년 40% 감축 목표조차 성공 가능성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환경부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 온실가스 총배출량은 6억 7665만 톤(CO2eq·이산화탄소 환산톤)으로 산림·농지·초지·습지 등 온실가스 흡수원(토지이용·토지이용변화·임업)을 제외한 순배출량은 6억 3888만 톤이다. 수치대로라면 전년 대비 총배출량은 3.4%, 순배출량은 3.6% 늘었다. 목표 설정이 능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헌재의 이번 결정으로 기업 부담이 늘어나는 등 경제성장에 악영향이 커질 것으로 우려했다. 손양훈 인천대 명예교수는 “유럽 등은 이미 1990년대에 탄소 배출 정점에 도달해 30년간 배출량을 줄여왔지만 한국은 1990년부터 30년간 탄소 배출량이 급증했고 아직도 정점에 도달하지 못해 같은 목표를 세운다는 것은 엄청난 과욕”이라며 “앞으로 철강과 제조업 등에 대한 부담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고 이에 따른 정부의 지원 부담도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세종=송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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