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올 상반기 기금운용본부에 대해 실시한 내부 감사 결과, 투자회사에 대한 경영진 관리 방안이 부족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부가 밸류업 프로그램을 강하게 추진하면서 국내 대형 상장사의 주요 주주로서 국민연금에 대한 역할론이 부각되는 시점에 기업 입장에서는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감사 결과가 나온 셈이다. 앞으로 국민연금이 사외이사를 비롯한 주요 이사 인사 등 핵심 경영 사안에 대한 적극적인 의견 개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30일 서울경제신문이 입수한 국민연금 감사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최근 기금운용본부를 대상으로 기금 운용 관리와 내부통제 운영 실태 등에 대한 종합 감사를 실시했다.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방만 경영을 예방하고 이의 재발 방지를 위한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취지다.
감사 결과 기금운용본부가 투자하고 있는 회사들의 이사와 감사에 대한 업무 지침을 개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언급이 나왔다. 또 투자한 회사들의 이사와 감사가 어떻게 선임됐는지를 비롯해 이들의 임기와 업무 수행 상태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는 요구도 언급됐다. 오너의 인사 전횡을 막고 경영 투명성을 보장해 주주 이익을 높이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이밖에 기금 운용 관련 외부 법률 자문 평가를 제때 실시하라는 지시가 내려졌고 기금 운용 관련 업무 자료를 소홀히 한 직원 등 3명에 대한 주의 조치도 실시됐다.
국민연금은 최근 한미약품·SK그룹 등 주요 투자 기업에 대한 의결권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미약품이 국민연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임종윤·신동국·남병호 신임 이사를 임명하자 국민연금은 최근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일반 투자로 바꾸고 비공개 대화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또 기업 간 인수합병(M&A) 건에 대한 반대 의사를 내기도 했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밸류업 촉진을 위해 이사 충실 의무 확대 논의 등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된 논의를 개진하는 상황에서 국민연금도 우선 현행 법 차원 내에서 내부 쇄신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부작용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작지 않다. 여기에는 정부의 밸류업 추진 과정에서 상장기업과 정부 간 갈등이 촉발될 수 있고 이런 국면에 국민연금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투영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