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범죄로 인해 퍼진 불법 영상물을 삭제하기 위한 예산이 올해보다 16% 넘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딥페이크(불법 합성물 제작)와 같은 불법 영상물이 청소년을 중심으로 확산하면서 피해가 매우 커지자 당정이 긴급히 디지털 성범죄 방지에 나섰지만 정작 피해 구제에는 무관심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30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불법 영상물 삭제 사업을 담당하는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관련 예산은 인건비를 제외하고 올해 12억 2800만 원에서 내년 10억 2600만 원으로 16.4% 삭감됐다. 인력 2명 증원에 따른 인건비 증액을 감안해도 5.9% 줄었다.
올해는 진흥원 내 관련 서버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 예산이 지난해보다 22.8% 늘었는데, 보안 사업이 올해 끝나면서 다시 2023년 예산(약 10억 원) 수준으로 후퇴한 것이다. 진흥원은 당초 국제 협력 및 기술 개발을 위해 내년에 약 30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호소했지만 여가부가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줄었다.
구체적으로 보면 급속도로 진화하는 디지털 성범죄 기술을 따라 잡기 위한 기술 개발 비용이 전무했다. 과거에 없었던 딥페이크·딥보이스 등 인공지능(AI) 기술을 악용한 새로운 디지털 성범죄 유형이 계속 나타나고 있지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기술 개발은 몇 년째 제자리 걸음을 반복하고 있어 사실상 후퇴한 셈이다.
해외 협력 예산도 고작 4000만 원 배정됐다. 불법 영상물이 올라오고 확산하는 사이트 대부분이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어 불법 영상물을 삭제하려면 국제 협력이 필요한데 이를 위한 재정적 지원이 없는 것이다. 정부의 지원이 없으면 피해자들은 거액을 들여 사설 디지털 장의사를 찾아야 하는 실정이다.
문제는 디지털 성범죄 유형과 확산 속도가 급속도로 고도화·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불법 영상물 삭제 지원 건수는 5년 전인 2018년보다 약 8배, 2020년보다 약 1.5배 급증했다. 신보라 한국여성인권진흥원장은 “디지털 성범죄 증가 속도, 관련 불법 영상물 확산 추세 등을 감안하면 이 같은 예산과 인력으로 불법 영상물 모니터링 및 삭제를 지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며 “딥페이크 추출 시스템과 같은 기술 개발도 꼭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가부 관계자는 “디성센터 예산은 삭제 지원 시스템 서버 이중화 작업 완료에 따라 순감된 부분”이라며 “여가부의 내년 전체 디지털 성범죄 대응 예산은 디성센터, 디지털성범죄 특화형 통합 상담소 지원 등 총 50억 7500만 원으로 전년(47억 8200만 원)으로 늘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