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의 시작은 ‘합리적 인간’이다. 수요가 늘고 공급이 줄면 물건의 값이 비싸진다는 가격 결정 이론부터 나라간 교역의 범위를 결정하는 무역 이론까지 경제학은 언제나 ‘인간은 합리적 선택을 하려고 애쓴다’는 전제를 고수한다. 이 같은 인간 존재에 대한 분석은 자신들이 연구하는 학문에 대한 자부심으로 이어진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경제학을 완벽한 학문이라고 생각하며, 학문간 융합의 필요성을 거부한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인간의 삶이 그렇게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전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삶은 언제나 이야기를 기반으로 움직이며, 비합리적일지언정 ‘감정’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는 게 인간이다.
‘감성X경제’의 저자 저자 게리 솔 모슨과 모턴 샤피로는 경제학이 이처럼 추상 개념에 빠져 인간 존재를 잊어버린 탓에 스스로 위기에 빠졌다고 지적한다. 한 가지로 설명할 수 없는 사회적 현상을 합리적 인간을 전제로 분석하느라 그릇된 정책 결정을 하게 된다는 것. 1992년 노벨상 수상자인 게리 베커의 주장을 보자. 베커는 신장 매매가 매도자에게는 금전적 이득을, 매수자에게는 생명 연장의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다며 공적인 장기거래 시장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이 같은 주장에 많은 사람들은 아마 ‘혐오’를 느낄테지만, ‘혐오’와 같은 감정은 경제학 연구의 대상이 아니다. 만약 장기 매매시장이 존재한다면, 누군가는 장기를 조달하기 위해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이같은 행동의 이유를 찾기 위해서는 ‘혐오’라는 인간의 감정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지만 경제학은 효용성을 찾는다는 명목 하에 온종일 그래프만 들여다보며 시간을 허비한다.
‘나라간 발전의 속도가 다른 이유를 한두 가지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고 지적한 부분도 흥미롭다. 미국이나 영국의 헌법을 러시아에 수출한다고 해서 해당 국가들이 미국만큼 빠르게 성장할 리 없다. 수용 과정에서 제도가 변형되기 때문이다. 이는 경제학 서적이 아닌 ‘안나 카레리나’와 같은 고전만 읽어도 알 수 있는 상식이지만 한때 러시아의 ‘서구주의자’들은 서유럽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만이 발전의 유일한 길이라 주장하며, 정책 결정을 그르쳤다.
경제학은 정책 결정에 영향을 주는 학문이다. 따라서 경제학의 위기는 국가, 더 나아가 인류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저자들은 경제학자들에게 ‘인문학', 특히 소설을 기반으로 한 경제학 연구에 집중할 것을 제안한다. 저자들은 “소설은 한 번도 다루지 않은 새로운 질문에 적용할 수 있는 윤리적 사고를 위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며 “정책을 권고할 때도 윤리적 문제가 수반될 때는 언제나 인문학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4만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