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사랑한다

정호승





밥그릇을 들고 길을 걷는다



목이 말라 손가락으로 강물 위에

사랑한다라고 쓰고 물을 마신다

갑자기 먹구름이 몰리고

몇 날 며칠 장대비가 때린다

도도히 황톳물이 흐른다



제비꽃이 아파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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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그친 뒤

강둑 위에서 제비꽃이 고개를 들고

강물을 내려다본다

젊은 송장 하나가 떠내려오다가

사랑한다

내 글씨에 걸려 떠내려가지 못한다

‘사랑한다’는 말에 걸려 떠내려가지 못하는 게 한둘이랴. 긴긴 겨울밤마다 고라니가 우는 소리를 들어보았는가? 봄밤에 우는 소쩍새 소리를 들어보았는가? 여름내 자지러지게 우는 매미 소리를 들어보았는가? 가으내 우는 귀뚜라미 소리를 안 들어보았는가? 구글 번역기로 저들의 말을 번역해 보았는가? ‘사랑한다’는 말 빼고 대체 무슨 단어가 남던가? 수, 금, 지, 화, 목, 토, 천, 해왕성이 덜커덩거리며 여태껏 태양 주위를 맴도는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아침마다 집 나온 당신, 저녁마다 되돌아가는 까닭이 무엇 때문이겠는가?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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