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할 때 가장 고민 되는 건 첫 질문이다. 시작이 좋으면 끝도 좋다는 말도 있지만 인터뷰 대상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부드러운 흐름을 이끌기 위해서도 첫 질문의 중요성은 크다. 첫 질문에서 막히지 않아야 서로 경계심이 풀리고 스스럼없는 질문과 대답이 오고 간다. 진솔한 대화를 위해 첫 질문을 어떻게 해야 할까. 징계에서 돌아온 윤이나와 ‘1대 1 인터뷰’ 일정을 잡고 살짝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그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제주삼다수 마스터스에서 복귀 후 첫 우승을 차지한 윤이나가 최근 읽었다고 밝힌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와 관련된 이야기면 되겠다 싶었다.
백세희 작가가 쓴 에세이는 우울증을 겪었던 저자가 어려움을 극복해 내는 이야기다. 인터넷을 통해 공감할 만한 문구를 찾아봤다. 그 중에는 ‘괜찮아 그늘이 없는 사람은 빛을 이해할 수 없어’ ‘우리는 울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힘들 땐 무조건 내가 제일 힘든 거야, 그건 이기적인 게 아냐’ 등등 문구가 마음을 울렸다. 이 글을 읽는 골프 팬들이 윤이나의 진심을 제대로 알려면 가급적 첨삭 수정이 없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그의 말투와 표현을 거의 그대로 옮겼다.
-책 읽는 걸 좋아한다고 했는데, 최근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을 읽었다고 했다. 내용 중 인상적인 부분은? 그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옛날에 국가대표 시절에 한 달에 책 한 권 읽기를 했었어요. 선수들 전부 같은 책을. 그래서 그 책을 다른 선수가 추천해서 다 같이 읽게 됐는데, 그때 당시에는 그냥 아무 생각 없었는데, 저는 원래 에세이를 별로 안 좋아했어요. ‘이대로도 괜찮다.’ 조금 어떻게 보면 제가 적용할 수 없는 부분도 있더라고요. 추상적이기도 해서 제대로 안 읽었는데, 그 책이 갑자기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읽었는데, (물론) 제게 딱 맞는 책은 아니었어요. 지금으로서 딱히 문구가 생각나는 건 없지만 어려움을 극복하는 스토리가 많은 것 같았고 잔잔하게 위로 받는 느낌이었어요. 나는 그래도 괜찮은 거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떡볶이 좋아하나?
▶(갑자기 목소리가 커지면서) 저도 떡볶이 좋아해요. 쌀 떡볶이요. 힘들었거든요. 공황 장애도 있었고. 사람 많은 데 나가는 거 힘들어 했고. 하얘지더라고요. 제가 처음 하는 얘기에요. 누구한테 얘기 안 했는데. 숨이 안 쉬어 졌어요. 그래서 너무 하얘져서 여기 못 있겠다. 장 보러 나갔을 때 얘기에요. 그래서 못 있게 되고 바로 나가기도 했고. 또 한 번은 제가 상벌위 갔을 때 카메라 기자님들이 엄청 많이 있었어요. 제가 포토 라인에 섰었거든요. 그 때 너무 많은 카메라 빛 후레시를 받아서 너무 많이 받아서. 그런데 그 이후에 약간 트라우마가 남았는지, 공항 나올 때 사람들이 저에게 카메라를 들고 있잖아요. 그게 막히더라고요. 그래서 아직 지금도 공항에서 나갈 때는 눈을 감고 나가요. 숨을 좀 쉬면서. 게이트 나오면 사람들이 일행들 반겨 주려고 핸드폰을 들고 있잖아요. 그때 되면 심장이 좀 두근거려서 아직도 주먹을 좀 쥐고 나가는 거 같아요. 제주도 갔다 오면서도 좀 그랬던 것 같고. (하지만) 많이 극복했고, 지금은 카메라 속에서 경기 하거나 하면서도 전혀 문제가 없고 하니까. 그게 조금 힘들었던 것 같아요.
-책 읽는 거 외에 취미가 있다면?
▶요즘 제가 기타를 막 배우기 시작했어요. 이제 막 1주일도 안됐어요. 사실 제가 음악을 좀 좋아하는 편이에요. 어릴 때는 피아노를 좋아했었고. 최근에는 제주도에도 기타를 가지고 갔었는데, 저는 기타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몰라요. 그런데 정말 쉬운 곡을 정해서 첫사랑이라는 곡이 있어요. 백아의 최신 곡이거든요. 백아라는 가수의 첫 사랑이라는 곡이 있는데, 코드 4개만 알면 되거든요. (그런데) 소리가 잘 안 나더라고요. 그 노래하고 황혼이라는 노래 첫 소절 연습하고 있어요.
-좋아하는 음식은?
▶전 고기 무조건 고기요.(웃음) 운동할 때도 좋고 좋은 식성을 타고 난 것 같아요. 운동 선수로서는. 엄마가 고기 좋아해요. 그래서 키가 크세요. 엄마는 육상을 잠깐 하셨어요. 아빠는 예술 쪽 하셨어요. 미술 전공하시기는 하셨는데. 몸은 엄마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엄마가 잠깐 골프를 치셨는데, 그 때 막 샷 이글 하시고, 처음 친 스크린 골프에서 홀인원 하시고 그러셨어요. 지금은 시간을 못 내시더라구요.
-시간이 나면 책 읽는 것이나 기타 치는 것 외에 또 무엇을 하나?
▶다이어리 정리도 하고요. 다이어리를 정리하는 게 좋아서 거기에는 진짜 많은 것들이 들어 있어요. 제가 12살 때부터 썼는데, 그 다이어리는 뺏다 꼈다가 좀 용이해서. 일기를 썼던 적도 있는데, 일기는 제가 그렇게 부지런하지 못해서 일기까지는 아니어도 짧게 짧게 그날 이 감정이 너무 힘들거나 기억하고 싶거나, 또 보고 싶은 또 느끼고 싶은 감정이다 싶으면 짧게 적어요. 매일 스케줄 관리하는 표가 있거든요. 거기에 짧게 짧게 적거나 안 적는 날도 있고. 그런 내용도 있고 경기 대회 기간 그런 것도 있고 레슨 일지도 있고, 제 게는 그 게(다이어리 쓰는 게) 감정 해소 법인 거 같아요. 힘들 때. 막 슬플 때. 화날 때.
-지금 생각나는 것 또는 쓰거나 기억 나는 것은?
▶사실 저는 좋을 때보다 힘들 때 많이 적는 거 같아요. 지금 기억에 남는 게, 맥콜 대회 때 제가 아파서 기권을 했어요. 그 때 사실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게 너무 경기를 하고 싶었는데, 중간에 나왔다는 약간의 죄책감. 죄책감 때문에 이게 너무 견디기가 힘든 거에요. 그래서 글을 좀 썼었는데, 처음에는 좀 자책으로 시작했어요. 몸 관리를 왜 그렇게 못했을까. 선수라면 선수의 필요한 자질인데, 그걸 왜 못했지 하면서 자책으로 시작했다가 어차피 이렇게 벌어진 거 잘 회복해서 다시 좋은 경기력으로 끌어올리면 되겠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마무리를 했거든요.
-팬클럽 이름이 ‘윤이나 빛이나’라고 알고 있는데. ‘미소 천사’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다니던 팬들도 있던데.
▶미소 천사는 그분들이 만들어낸 거에요. 제가 웃는 게 그렇게 이쁜지 모르겠는데...(웃음)
-윤이나란 이름은 정말 ‘윤이 나는’ 사람이 되라고 지었다고 들었다.
▶맞아요. 태몽을 외할머니가 꾸셨는데, 보석 꿈을 꾸셨대요. 그래서 엄마에게 (그 얘기를) 전해 주셨는데, 친 할머니가 얘는 무조건 윤이나다. 그냥 한글 이름이다. 윤이 나라 세상에 윤이 나라 하시면서 지으라 하셨대요.
-이름 좋다는 이들이 많다. 그래도 어릴 때는 이름 갖고 장난 치는 친구들도 있었을 것 같은데.
▶이름 저도 좋아요. 어렸을 때는 그 뜻을 잘 몰라서 친구들이 ‘윤이나’보다 ‘이나’를 거꾸로 하면 ‘나이’잖아요. 그래서 ‘나이야’ ‘나이야’ 이렇게 부른 친구들이 있었어요. 사실 그건 놀리는 것 같지는 않고. 오히려 크고 나서 저를 모르는, 막 국가대표 하고, 프로 대회 막 나왔을 때 ‘광이 나’, ‘땀이 나’, ‘맨들맨들 윤이나’ 하는 분들이 대게 많았아요. ‘맨들맨들 윤이나’가 제일 재미 있었던 것 같아요. 팬 분들이 저를 잘 모르시는 골프 팬 분들이 그렇게 부르셨던 거 같아요.
-닮고 싶은 롤 모델은?
▶저는 신지애 프로님. 정말 존경스러워요. 자주 연락을 하는 편이에요. 많이 챙겨 주셔서. 항상 감사하죠.
-누군가의 장기, 저거 하나 내가 갖고 싶으면 했던 게 있었는지?
▶누군가 잘 하는 걸 보면 저 선수가 어떻게 하는지 저한테 적용 시키려고 많이 하는 거 같아요. 하지만 (내가 갖고 싶으면 했던 남의 장기)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거 같아요. 갖고 싶거나.
-어렸을 때 타이거 우즈나 안니카 소렌스탐이 경기하는 거 자주 봤는지?
▶그때는 사실 많이 못 봤어요. 저희 집에는 TV를 거의 안 틀었거든요. 옛날에는 아침에 6시 반에 연습장에 나가서, 일주일에 다섯 번은 아침에 새벽 라운드를 도는데, 그때는 5시에 나갔어요. 5시부터 거의 11시, 10시 반까지 연습장에 살았어요. 그래서 사실 TV를 거의 안 봤어요. 그렇게 5년 정도 보냈던 것 같아요. 주니어 어렸을 시절에는.
-팬들이 보낸 인상적인 선물이 있는지?
▶저는 사실 편지가 제일 좋아요. 진심이 담긴 그런 편지 선물이 기억에 남고. 집 한쪽에 다 붙여 놓거든요, (손을 벌리며) 이만큼. 지나 가면서 읽고 할 때마다 힘이 많이 되죠.
-생각나는 내용은?
▶‘우리 프로님이어서 고맙다’는 말이 있었어요. 그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올 블랙’을 입었을 때 멋있다고 하는 팬들이 많은 것 같다. 옷 고를 때 좋아하는 색깔은?
▶저도 올 블랙 좋아해요. 좀 시크하면서도 뭔가 경기에 집중하는 듯한 모습이 좀 보일 것 같아서. 그래서 올 블랙을 좋아해요. 물론 요즘 같이 더운 날에는 입기 힘들지만.
-고진영 선수가 ‘올 화이트’를 입었을 때 멋있다는 팬들이 있다. ▶‘올 화이트’도 좋아요. 위 아래 컬러를 맞춰 입는 걸 좀 좋아하는 것 같아요. 검정색 좋아해요. 그리고 분홍색도 좋아해요. 어떤 날은 검정색 입고 또 어떤 날은 흰색에 분홍색을 입는데, 둘 중에 고르라고 그러면 제가 입는 옷이라고 했을 때 검정색을 더 좋아해요.
-미국에서 미니 투어를 뛸 때 남자 선수들 이름 사이에 ‘윤이나’ 이름 있는 순위표를 누군가 보낸 적이 있다. 미국에서는 얼마나 있었나?
▶거의 6개월 정도. 왜냐하면 미국에서 지낸 시간이 6개월이라. 오랜 기간은 아니었는데. 그게 마이너리그, 플로리다 주에서 하는 건데, 대게 작은 대회인데, 거기에 여자 선수들은 거의 안 나오더라고요. 티(박스)는 달라요. 그게 (티 박스 거리) 큰 차이는 나지 않더라고요. 순위는 같이 합쳐서 순위를 매겨요.
-혹시 우승을 한 적은?
▶준우승 몇 번 했던 것 같아요. 연장도 갔었는데, 셋이서. 남자 선수 둘, 여자는 저 혼자였어요. 취미로 나오는 선수들도 있는데, 콘페리 투어 예선 치면서 같이 나오는 선수도 있었어요. 그런 선수들은 정말 잘 치더라고요.
-스스로 생각하는 내 골프의 장점과 단점은?
▶저는, 골프가, 많은 분들이 말씀을 하시는데, 인생 같다고 느껴져요. 제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고 또 어떤 때는 대게 힘들게 나가다가 어떤 때는 또 이렇게 잘 풀리나 싶을 정도로 잘 풀리고, 그리고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하고, 계속 참아야 되잖아요. 그런 면이, 제가 좀 인생을 논할 만큼 오래 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여 때까지 살아온, 여 때까지 겪어온 시간들로 봤을 때, 어쩌면 비슷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게 장점이자 단점인 것 같아요. 많이 참고 인내해야 하니까.
-웨지는 몇 개를 갖고 다니나? 가장 좋아하는 클럽은?
▶웨지는 3개 있어요. 58도, 54도, 50도. 가장 자신 있는 클럽은 제가 우드를 좀 잘 치는 것 같아요. 사실 그 부분에 있어서 많이 부정을 해 왔었는데, 우드를 그렇게 잘 치는 편이 아니라고. 캐디 삼촌께서 ‘너는 정말 우드를 잘 치는 거’라고 얘기해 주셨어요.
-우드라면 티샷할 때? 아니면 페어웨이에서 샷을 할 때?
▶모든 면에서요. 제가 우드 거리가 조금 멀리 가는 편인데, 그럼에도 방향 컨트롤이 어느 정도 되는 편이어서.
-9번 아이언이 얼마나 나가나?
▶9번 클럽으로 캐리 130m를 봐요.
-보통 여자 선수들은 그렇게 못 칠텐데?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한 120m 정도.
-웨지 샷을 할 때 임팩트 후에도 양 발이 붙어있을 때가 있던데, 발 고정 시켜 치는 건 어느 정도 거리에서?
▶그게 라이 상황 따라서 좀 다르고요. 트레이너 선생님이나 코치님이나 가급적이면 발을 붙이고 치지 말라고. 부상의 위험이 있으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저는 그렇게 했을 때 방향 컨트롤이 잘 돼서, 저도 웬만해서는 안하려고 하지만 정말 중요한 상황에서 저도 모르게 발이 붙는 거 같아요. 약간 본능적인 감각인 것 같아요.
-어릴 때 장타를 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사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멀리 보내기 위해서 노력을 한 적은 없었어요. 근데 하나 생각 나는 게 있다면 제가 (골프) 시작을 인도어에서 했어요. 스크린도 아닌, 왜 천막으로 된 진짜 서울에 지하에 있는 연습장이 있잖아요. 치면 쿵 소리 나는. 7번 깃발이 그려져서. 거기에서 시작을 했어요. 그래서 1년 반 한 2년. (거리가) 얼마나 나가는 지도 잘 몰랐는데, 그 꽝 소리가 너무 좋은 거에요. 세게 칠수록 더 크게 소리가 나잖아요. 그래서 더 세게, 더 큰 소리를 내기 위해서 막 쳤던 기억이 나기는 해요.
-자신이 처음 장타를 친다고 느꼈을 때는?
▶초등학생 때부터 알고는 있었어요. 저는 다른 선수들이랑 탄착군이 좀 달라서 멀리 가는구나라는 거는 알고 있었는데, 커 가면서 조금 더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주변에서 정말 거리 멀리 나가는구나 얘기하면서. 어릴 때도 키가 큰 편이었어요. 5학년 때 거의 160대였던 것 같아요.
-장타자라 장타에 집착하는 편인가?
▶장타는 전혀 집착하지 않아요. 루키 때는 조금 신경 썼던 것 같은데. 지금은 조금 더 제 플레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신경 써요.
-제일 자신있는 거리는?
▶저는 83m 인거 같아요.
-딱 83m?
▶좀 이상하나요?(웃음) 54도 웨지를 잡아요. 편안하게 쳤을 때. 이 때 (양)발을 붙이거나 그랬던 거 같아요. (하지만) 안 붙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제주에서 기자들과 인터뷰 했을 때 ‘아마추어 장타 치는 방법’에 대해 배에 힘을 주라고 했었는데?
▶많은 분들이 보통 배치기 동작을 많이 하시잖아요. 배치기가 임팩트 때 배가 숨어지지 못하고 앞으로 나오면서 이렇게 푸시볼 많이 치시는데. 배가 많이 밀리시는데, 앞쪽으로. 배가 어드레스 때 힘을 잘 주고 있으면 임팩트 때 누가 마치 배를 주먹으로 세게 때리려고 할 때 배에 힘을 주잖아요. 약간 그런 느낌으로 임팩트가 돼야 힘이 어디로 분산 되지 않고 힘이 모인다는 얘기였습니다.
-장타 치는 선수는 항상 부상 위험에 노출된다고 보는데. 그걸 피하기 위해 하는 노력은?
▶평소 관절들 보완 운동, 부위 부위 보완 운동을 좀 많이 하고 있어요.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너무 강하게 스윙하지 않으려고, 최근에는 가볍게 스윙 하고 있거든요. 최근 경기를 보시면 무리해 스윙 하지 않는 모습을 보실 수 있으실 텐데, 가볍게 치면서 제가 약했던 부위들 보완 운동을 하고 있어요.
-퍼팅 감각이 늦게 올라온다고 들었는데?
▶다른 선수들보다 제가 좀 늦게 적응을 하는 편인 거 같아요. 감각이 좀 천천히 올라 오는 편인 거 같아요. 막 빨리 시작하지 못하고.
-현재 벙커 샷 세이브율 1위다.
▶벙커 샷을 제가 잘 치는 편인지는 모르겠는데, 자신 있게 치는 편이기는 해요. 부담이 좀 적어요.
-긴장할 때 푸는 자신만의 방법은?
▶자기 혼잣말도 많이 하고 캐디 삼촌하고 대화도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러면서 좀 긴장을 풀고. ‘별거 아니다’ 이 얘기를 많이 내뱉고 있어요.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만약 트리플 보기가 나왔다. 그럼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인가?
▶(앞선 미스 샷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에요. 그래서 대개 많이 생각을 해요. ‘괜찮다’고. 빨리 해소하는 방법을 찾은 거 같아요.
-인내심이 강점이라고 했는데? 구체적인 예가 있나?
▶사실은 제가 어렸을 때부터 해왔는데, 이거는 저희 엄마가 많이 애써주셨어요. 제가 막 초등학생, 유치원 요 때 뭔 가를 하고 싶을 때 엄마가 바로 안 시켜주셨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피아노를 너무 배우고 싶다고 제가 이야기를 할 때, 바로 안 시키시고 제가 계속해서 요구를 하고 제가 정말 진심으로 하고 싶다고 엄마가 느꼈을 때, 그러면 ‘너 이거 시작하면 끝까지 해야 해’ ‘네가 하기 싫은 때도 올 거고 분명 네가 이걸 재미 없다고 느낄 때도 올 거야.’ ‘근데도 그걸 네가 그때 견뎌낼 수 있어야 해.’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셨대요. 그럼에도 제가 하고 싶다고 얘기를 했고 실제로 그걸 하라고 했어요. 그렇게 꽤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엄마 아빠 중 엄마가 더 무섭나?
▶네(웃음). 근데 두 분 다 친구처럼 잘 해주세요.
-자신에 대한 기사는 많이 읽는 편인가?
▶저는 기사를 많이 읽는 편이에요. 특히 그때 힘들었을 때는 다 봤던 거 같아요. 유튜브도. 제가 그래서 좀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 일 터지고. 뉴스에 많이 나오고. 유튜브 보면서 댓글들을 다 읽었던 것 같아요. 그 댓글을 다 봤어요. 기억에 남는 게, (조회수가) 550만 회인가, 제가 봤을 때 거기 댓글이 5500개 넘게 달린 거에요. 그걸 제가 다 읽었어요. 잠을 잘 수가 없으니까요. 그걸 다 읽고 하니까 그게 참 괴롭히더라고요. 대게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그 이후로 덜 찾아 보기는 하는데, 지금도 한 번씩 검색해 보는 편이에요.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참 너무 많았어요. 1년 6개월이지만 저한테는 1년 9개월이거든요. 그때 정말 저에게 있어서 여태 까지 살아온 인생이 길지는 않지만 제일 힘든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거의 한 석달 동안은 집 밖에 못 나갔었거든요. 제가 14년 동안 키웠던 강아지를 하늘로 보내고, 작년 초에. 그래서 더 힘들었던 것 같고. 그 일 있고 두 달 세 달 정도 있었을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가장 기뻤던 순간은? 우승 했을 때?
▶가장 기뻤을 때는 복귀 소식을 들었을 때인 거 같아요. 기사 나기 바로 전에 알았어요. 그 전에는 뭘 위해서 이 시간을 보내는 지 몰라했어요. 왜 골프를 하고 있지? 이런 생각도 많이 했고. 열심히는 해야겠는데, 왜 열심히 해야 되는지 모르겠고.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이 안 따라 주더라고요. 그러고 있던 중에, 그러고 계속 시간을 보내던 중에, 복귀 소식을 듣고 그때가 아마 제일 좋았던 거 같아요.
-윤이나 선수 하면 골프 팬들에게 앞으로 어떤 이미지로 기억이 됐으면 하는지?
▶감동을 주는 선수요. 진심이 통하는 선수, 그리고 항상 감사하는 선수. 저는 감동을 주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단지 잘 쳐서 혹은 멀리 쳐서, 그냥 좋은 선수 말고. 뭔가 가슴을 울리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해외 진출과 관련해 올해 무조건 LPGA 투어에 도전한다고 들었는데?
▶제 마음도 그래요. (세계 랭킹) 75위 안에 들면 퀄리파잉 최종전으로 갈 수 있어요.
-앞으로 하고 싶은 큰 목표가 있을 텐 데?
▶제가 항상 생각하고 있는 게 있는 데, 한국 골프가 더 커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제가 거기에 조금이라도 도움 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아시안 게임, 올림픽,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나갈 수 있는 그런 대회들을, 올림픽은 너무 나가고 싶어요. 한국을 빛낼 수 있는 선수, 대한민국 골프를 조금 더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선수. 그게 목표인 거 같아요. 제가 꿈꿔왔던. 그걸 보면서 자라왔잖아요. 지금 이 자리까지 오는데, 갈 길이 더 멀지만 그래도 이만큼 오는데 꿈을 키워준 대한민국 골프가 너무 고마워서. 그리고 후배 선수들도 그렇게 보고 자라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더 한국 골프가 빛 났으면 좋겠어요.
윤이나와의 인터뷰는 여기까지다. 시련은 극복하기 힘들지만 그걸 넘어서면 사람을 강하게 한다. 그게 실수나 잘못으로 인한 시련일지라도. 윤이나는 그 시련을 통해 분명 한 단계 성숙해졌을 것이다. 인터뷰를 하면서 어렴풋하게 그걸 느끼고 있었다.
골프 기자로서 처음 ‘1대 1 인터뷰’를 한 선수는 ‘여고생 박세리’였다. 25년도 훨씬 전 후원 사 삼성이 LPGA 진출을 준비하는 박세리를 위해 마련한 분당의 한 아파트에서 였다. 이게 평행이론이란 걸까. LPGA 진출을 꿈꾸는 윤이나와 인터뷰를 하면서 그때 감정이 살짝 오버랩 되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