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중기·벤처

[여명]'화장발' 중기 수출

정영현 성장기업부장

수출액 늘었지만 화장품만 약진

대부분 중기 실적 유지에도 허덕

해외 현지 수요 분석등 지원 확대

수출 포기 않도록 자생력 길러줘야


올 상반기 중소기업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4.4% 증가한 571억 달러를 기록했다.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대 상반기 실적이다. 10대 수출국 중 7개국으로의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증가했다. 10대 중기 수출 품목 중 8개가 플러스 성장을 했다. 고무적인 수치다.

하지만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평가의 방향은 달라진다. 중소기업 수출 1위 품목이 화장품이다. 중기 화장품은 올 상반기 33억 달러어치가 수출됐다. 화장품의 수출 증가율은 30.8%,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8%에 달했다. 화장품 산업만을 놓고 보면 충분히 반길 일이고, 박수 쳐줘야 할 성과이나 2023년 기준 중기 수출 품목이 8960개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특정 품목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게다가 이 같은 화장품 수출 성과는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급격히 커진 한류 인기와 한국콜마·코스맥스 같은 대형 제조업자개발생산(ODM) 기업의 생산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결국 한류와 ODM 기업 덕에 수출 무대에서 화장품에 눈부신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동안 무대 장막 뒤 다른 품목들은 수출 부진과 경쟁력 약화에 대한 고민을 끌어안은 채 한숨을 쉰 격이다.

사실 중기 수출의 체질 개선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최근 한일경상학회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의뢰로 작성한 중기 수출 보고서에 따르면 중기 수출은 지난 10년 동안 연평균 1.4%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전체 수출에서 중기의 영향력과 존재감도 약화하고 있다. 중기가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6년 20%를 넘어섰으나 2022년 16.7%까지 다시 쪼그라들었다. 게다가 수출 중기의 83.7%가 100만 달러가 안 되는 수출 실적을 내고 있다. 수출 지역도 편중돼 있다. 과거에 비해 낮아졌다고는 하나 미국·중국·일본·베트남 등 4개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여전히 51.1% 수준에 달한다. 추가 성장 동력을 찾아낼 방법을 몰라 관성적으로 팔던 곳에 계속 팔면서 고만고만한 실적 올리기를 매년 반복하는 게 한국 중기 수출의 현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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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도 이런 상황을 모르거나 방치하고 있지는 않다. 예를 들어 지난달 7일 경제장관회의에서 중기 도약 프로그램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혁신 역량과 성장 의지를 갖춘 중기 100개를 선발해 경영 멘토링과 수출 디렉팅 등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기업별 해외 진출 수요를 분석해 현지에서 지원 받을 수 있도록 물리적·인적 지원 시스템도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기업의 실질 요구를 반영한 정책이라는 점에서 반길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수출 중기가 9만여 개에 달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충분한 정책적 지원이라 할 수 없다. 정부의 지원이 극소수에 집중되는 동안 대다수 중기는 방향을 잃고 성장 대신 포기를 선택할 수 있다. 정밀 지원도 필요하지만 범용 지원의 확대도 동반돼야 한다. 정부의 특별 프로그램에 선발되지 않더라도 스스로 새로운 시장 개척에 나서려는 중기가 쉽게 문을 두드릴 수 있는 현지 지원 기관의 기능을 과감하게 확대해야 한다. 돈을 들여서라도 머물 수 있는 공간은 물론 이들에게 제공하는 시장 분석 정보의 질을 높여야 한다.

대신 스스로 잘하고 있는 기업들에 대한 과도한 관심은 자제해야 한다. 앞서 말한 화장품이 대표적이다. 화장품의 경우 지난 20여 년 동안 괄목할 만한 대내외 성장을 이뤘지만 이는 정부 지원 덕이 아니다. 2000년대 아모레퍼시픽·LG생활건강 등 대기업 제품이 중국에서 대박이 났을 때도, 티르티르·롬앤·메디큐브 등 신생 중소기업이 미국·일본에서 큰 인기를 누리는 현재도 관련 기업들이 스스로 트렌드를 읽고 시장을 분석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이들의 자생력은 충분하다. 이런 분야에 대한 정부의 관심은 ‘남이 차린 밥상에 숟가락 얹기’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정부의 화장품 관련 정책 지원 약속이나 이벤트는 최근 들어 부쩍 늘었다.

세계 무대에서 경쟁한다는 건 인적·물적 자원을 자체적으로 충분히 갖춘 삼성이나 현대차에도 어렵고 두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9만 여 중기가 ‘어렵고 두려운’ 수출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빛나는’ 통계 숫자에만 매몰돼 속앓이를 하고 있는 이들을 내버려둬선 안 된다.






정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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