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라이프

식탁 채울수록 식수 사라진다

■플래닛 아쿠아(제러미 리프킨 지음, 민음사 펴냄)

美 보조금에 대량농업 용수 급증

세계 연간 담수 사용량 92% 달해

인류식량이 생존권 위협 딜레마

육식·소유·노동 종말 꺼낸 석학

이번엔 '수력문명의 위기' 설파

"지구명을 아쿠아" 인식전환 촉구







인류 최초의 도시 문명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는 애칭을 가진 지중해 연안에서 시작됐다. 오늘 날의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요르단을 비롯해 쿠웨이트, 튀르키예, 이란의 일부 지역을 포함하는 지역이다. 밀과 보리 재배는 물론 수력 문명의 중심이 됐던 지중해 연안은 그리스, 로마 제국을 거치면서 오랫동안 번성했다. 주로 역사학자들의 관심 대상이었던 이 지역은 이제 기후 과학자들에게는 최전선의 일터가 됐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의 경우 지난 40년 간 강물의 양이 40% 감소한 데다 이 속도에 가속이 붙고 있다. 지난 세기 지구의 기온이 섭씨 1.3도 상승한 데 반해 이라크는 두 배에 달하는 섭씨 2.5도가 상승하면서 나타난 변화다. 이들 강의 자원을 담수로 활용하는 튀르키예, 시리아, 이란, 이라크에서는 생존권을 위협받는 문제다. 국제연합환경계획에 따르면 지중해 지역은 세계 전체와 비교했을 때 온난화 속도가 20% 더 빠르다.



‘육식의 종말’ ‘소유의 종말’ ‘노동의 종말’ 등 종말 시리즈 3부작을 쓴 세계적인 석학 제러미 리프킨이 ‘회복력의 시대(2022년)’ 이후 2년 만에 신작 ‘플래닛 아쿠아(Planet Aqua)’으로 돌아왔다. 사회학자 겸 경제학자인 그가 첨예한 문제 의식으로 다룬 것은 ‘수권(水圈)’의 위기 즉 수력 문명의 종말이다. 올해 79세가 된 노학자는 2050년이면 전체 인류의 절반이 넘는 47억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생태적 위협이 높거나 극심한 국가’에 거주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에 가슴이 답답해진다고 했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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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물 부족의 원인을 제공하는 국가들이 따로 있고 그 결과로 인한 재앙을 직접적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국가들이 따로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물 부족 문제의 이 같은 아이러니한 상황을 꼼꼼히 짚어본다. 2015년 기준 담수 및 전체 물 소비량에 있어 전 세계 상위 4개국은 중국, 미국, 인도, 러시아로 꼽힌다. 이들의 특징은 인구가 많다는 것 외에도 화석연료 기반의 경제 질서와 지정학적으로 대규모 군사적 역량을 가진 국가라는 점이다. 하지만 물 부족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생존권에 위협을 받고 거주지를 떠나야 하는 이들은 그 외의 나라들이다. 수권이 물에 대한 접근성 외에도 ‘파워 게임’으로 인해 좌우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작용하는 부분이다.



그가 주목한 것은 생활용수와 공업용수가 아닌 농업용수다. ‘물 발자국’에 해당하는 ‘가상수(식품이나 제품의 생산·유통·소비 과정 전체에 들어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물의 총량)’ 기준으로 보면 미국의 1인당 가상수가 가장 높다. 막대한 물을 사용하는 분야는 목욕, 요리, 청소 등 생활 용수가 아니 농업용수다. 농업용수가 전 세계 연간 담수 사용량의 92%를 차지하는데 미국 정부가 농경 부문에 지원하는 보조금이 하나의 인센티브로 작용해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 그에 따르면 2020년에만 미국 정부가 농장에 지급한 지원금이 농가 순소득의 39%에 육박하는 465억 달러(약 62조원)에 달했다. 인류를 먹여 살리기 위해 수많은 물이 축나는 딜레마가 발생한다는 의미다.

리프킨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인류는 물에 대한 접근권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거주지로 떠나야 하고 ‘신유목민의 시대’가 열릴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인류가 받아든 ‘엔트로피 계산서’의 총액이 더 커지기 전에 그는 지구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제안한다. 그 중 하나가 지구라는 행성의 이름을 ‘아쿠아(Aqua)’로 바꾸는 것이다. 평소에 인식하지 못하는 물이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는 주장이다. 저자는 물을 모든 생명의 원천이자 법적 권리로 인정하는 데서 지구의 재생가능성의 단초가 열린다고 말한다. 45억년의 지구 역사 중 수력 문명 6000년의 역사가 손가락만한 구멍을 막지 못해 무너지는 일을 막아야 한다. 무엇이든 그렇듯 아직 늦지는 않았다는 게 책을 덮고 난 뒤 느끼게 되는 섬뜩함 속 한 줄기 위안이다.


정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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