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로터리] 기본소득이냐 서울디딤돌소득이냐

김병민 서울시 정무부시장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그늘은 짙었다. 재정 위기를 겪은 선진국이 복지 예산을 줄이면서 약자의 고통이 가중됐다. 복지 천국이라던 북유럽에서도 불평등이 심화했다. 부유하되 불행한 나라가 속출했다.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즈음 품은 화두가 ‘지속 가능한 복지의 원리’다. 지방의원 시절 의정 활동의 주요 관심사는 복지 예산의 쓰임새였다. 박사 과정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복지 재정을 주제로 논문을 썼다. 여러 경험을 통해 내린 결론은 단순하다. ‘모두를 위한 지출은 누구도 구할 수 없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은 수혜 대상의 형편을 고려하지 않는다. 암 환자와 감기 환자, 실직자와 최고경영자(CEO)가 같은 돈을 받는다. 노인이라고 더 주는 것도 아니다. 언뜻 공평해 보이지만 실은 불공평이다. 현실의 격차를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보편이라는 선의로 포장된 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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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성도 낮다. 인구 5163만 명에게 월 30만 원씩 기본소득을 주려면 185조 원이 필요하다. 올해 24조 4000억 원이 쓰이는 기초연금을 두고도 재정 위기 가능성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증세가 아니고는 185조 원을 하나의 정책에 쓸 방법은 없다. 예산을 줄이면 가성비가 떨어진다. 30조 원을 썼을 때 국민 한 사람이 매달 받는 돈은 5만 원에 불과하다. 사각지대는 없겠지만 빈곤을 해소하기엔 난망한 금액이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서울디딤돌소득(옛 안심소득)’이다. 이론적 기반은 밀턴 프리드먼이 고안한 ‘음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다. 대상은 기준중위소득 85% 이하 가구다. 기준 소득 대비 부족한 가구소득의 절반을 지원한다. 취약층에 집중해 재정 효율을 꾀한다는 점에서 기본소득과 철학적으로 대척점에 있다. 수급자의 소득이 기준치를 넘어도 자격이 유지돼 근로 의욕을 떨어뜨리지도 않는다.

실효성을 파악하기 위해 서울시는 2022년 기준 중위소득 50% 이하 484가구를 대상으로 그해 7월부터 시범 사업을 시작했다. 결과는 고무적이다. 대상 가구의 22%는 근로소득이 늘었다. 기준 소득을 넘겨 더는 지원이 필요하지 않은 가구, 일명 ‘탈수급’ 비율은 4.8%였다.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0.07%)의 탈수급 비율을 70배 웃돈다. 실험 중이라 조심스럽지만 전국화를 고려해야 할 소득재분배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복지는 패자에게 베푸는 시혜가 아니다. ‘부모를 잘못 만난 불운, 살아가며 맞닥뜨린 이런저런 불운을 극복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김현철 ‘경제학이 필요한 순간’)’ 기회를 주는 정책이다. 그러니 불운한 이를 집중 지원하는 게 상식이다. 기회의 평등을 외치는 사람들이 서울디딤돌소득을 반대한다면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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