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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영풍 갈라지면 글로벌 위상도 타격 불가피 [시그널]

전세계 아연 생산량 10% 차지

분리될 경우 입지 크게 줄어들어

내년 3월 제련수수료 협상 관건

"20년 누린 시장 지배력 물거품"

장형진(왼쪽) 영풍 고문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장형진(왼쪽) 영풍 고문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글로벌 비철금속 시장에서 20년 넘게 시장 지배자적 위상을 누려온 고려아연(010130)영풍(000670)의 위상이 당장 내년부터 크게 흔들릴 처지에 놓였다. 두 회사가 사실상 결별 수순을 밟으면서 세계 최대 아연 제련기업으로서의 입지에도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영풍과 고려아연은 전세계 아연 생산량 1200만톤 중 10%를 책임지는 세계 1위 제련기업이다. 개별로 보면 고려아연이 64만톤, 영풍 36만톤, 썬메탈 20만톤 등이다.

고려아연은 그동안 최대 생산량을 바탕으로 수수료 협상에서 막강한 바게닝파워(교섭력)을 쥐고 있었지만 앞으로는 사정이 달라질 것이라는 게 업계 평가다. 시장 지배력을 상실하게 되면 제련기업의 수익성을 좌우하는 제련수수료 협상 등에서 이전 만큼의 교섭력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고려아연과 영풍은 매년 3월 캐나다의 세계 최대 아연 광산업체 텍리소시스와 제련수수료 협상을 벌인다. 여기에서 정해지는 제련수수료가 글로벌 시장에서 벤치마크로 쓰인다. 업계에서는 영풍과 고려아연이 공개적으로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는 만큼 당장 내년 3월 예정된 텍리소시스와의 협상이 불리한 구도로 흘러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텍리소시스 입장에서 고려아연은 더이상 연산 120만톤 규모의 세계 최대 제련업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수수료 협상에서 유리한 결과를 내지 못하면 이는 결국 고려아연의 수익성 타격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제련기업의 수익성은 광산업자로부터 받는 수수료와 최종 고객으로부터 받는 판매 프리미엄으로 좌우된다"며 "고려아연과 영풍이 갈라서면 글로벌 비철금속시장에서 지난 20년동안 누렸던 시장 지배자로서의 이익을 더이상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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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서는 고려아연이 국익을 위해 설립된 기업인 만큼 두 회사가 협력 관계를 지속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고려아연은 국익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기업이다. 1973년 박정희 정부가 중화학공업과 기초소재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울산광역시 온산읍에 대규모 비철금속 공업단지를 조성하고 기업들에 적극적인 투자를 주문했다. 당시 영풍은 이미 1970년부터 경북 봉화군 석포면에 연산 1만톤 규모의 석포제련소를 가동하고 있었고 새로 조성될 온산 공업단지에 제2제련소를 지어 생산능력을 높이고자 했다. 박정희 정부가 영풍의 계획을 받아들이면서 해외 차관 도입의 용이성 등을 이유로 별도 기업으로 설립할 것을 권고했고 이에 따라 온산제련소는 '고려아연'이라는 새 이름으로 지어졌다. 영풍은 당시 영풍산업과 각각 5000만원을 출자해 자본금 1억 원 규모의 고려아연을 탄생시켰다. 이후 영풍 경영은 장씨 일가가, 고려아연은 최씨 일가가 전담하는 지배구조가 75년간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일각에서는 두 집안의 동거 체제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두 일가 2세들의 수에 기인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장씨 일가의 2세는 현재의 장형진 고문을 포함해 두 형제였고, 최씨 일가의 2세는 다섯 형제나 됐다. 2세 승계가 시작되면서 최씨 지분이 장씨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분산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반해 장씨는 별다른 변동이 없었다. 지분 구조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두 일가는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동업관계를 지속해왔다.

균열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최기호 창업주의 손자인 최윤범 회장이 2022년 고려아연 회장에 오른 후다. 최 회장이 2차전지 소재·신재생 에너지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현대차와 한화, LG 등 외부와 손을 잡았고, 제3자 유상증자 등을 통해 이들 기업을 우호세력으로 포섭했다. 이 과정에서 장씨 일가 지분율은 줄어들고, 최씨 일가 우호 지분율이 늘아면서 두 일가 사이 갈등이 격화됐다.

올해는 동업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비철금속 수출 회사 서린상사를 두고도 갈등이 이어졌다. 서린상사는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이 비철금속 해외 수출을 위해 1984년 설립한 기업으로 고려아연의 온산제련소와 호주 자회사 썬메탈, 영풍의 석포제련소가 생산하는 비철금속의 수출·판매·물류를 전담해왔다. 최대주주는 고려아연이었지만 경영은 영풍 쪽에서 맡아 왔는데, 고려아연은 지난 6월 서린상사 임시 주주총회에서 고려아연 측 인사 4명을 사내이사로 선임하며 경영권을 확보했다. 이후 서린상사 사명을 KZ트레이딩으로 변경하고 영풍과의 위탁 거래 관계도 끊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고려아연과 영풍은 20여년간 글로벌 비철금속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우리나라 기초소재 산업 발전에 지대한 기여를 해왔다”며 “글로벌 시장에서의 국익을 생각한다면 두 회사의 건설적인 협력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박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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