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거대 의석을 앞세워 ‘김건희 특검법’을 비롯한 쟁점 법안들을 강행 처리하며 입법 독주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해 국회로 되돌아온 ‘노란봉투법’과 ‘전 국민 25만 원 지원법’ 등의 재표결도 벼르고 있다. 거대 야당이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고 있는 정부·여당을 겨냥한 총력 공세를 예고하면서 야당 강행 처리와 대통령 거부권 행사, 재표결로 이어지는 ‘도돌이표’ 정쟁 국회가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9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의힘이 표결에 불참한 가운데 야당이 재석 167명 전원 찬성으로 가결한 김건희 특검법은 21대 국회에서 통과됐던 특검법보다 한층 강력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삼부토건 주가조작 사건에 더해 22대 총선 개입 의혹과 명품 백 수수 의혹, ‘임성근 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 등 총 여덟 가지 의혹이 수사 대상에 포함됐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본회의 표결에 앞서 “김 여사 의혹은 최순실보다 더한 국정 농단이라는 국민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며 “김 여사가 가야 할 곳은 마포대교나 체코가 아니라 특검 조사실”이라고 압박했다.
야당 단독으로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채 상병 특검법’과 ‘지역화폐법’도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야당이 네 차례나 발의해 본회의 통과만 세 번째를 맞은 채 상병 특검법은 대법원장이 특검 후보 4명을 추천하는 ‘제3자 추천’ 방식을 띠고는 있지만 사실상 대법원장 추천 인사에 대한 야당의 비토권을 보장하고 있다. 정부의 지역사랑상품권 재정 지원을 의무화하는 지역화폐법에 대해서도 국민의힘은 ‘현금 살포를 의무화하는 악법 중의 악법’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다만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여당 의원 가운데 유일하게 채 상병 특검법 표결에 참석해 찬성표를 던졌다. 안 의원은 표결 직후 기자들과 만나 “국가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젊은 생명에 대해서 진상을 밝히는 게 국가의 도리고 존재의 의미”라면서도 “여야 합의 없이 처리된 이번 특검법은 ‘차악’”이라고 지적했다.
여당은 야당의 입법 독주에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맞대응하는 대신 본회의 표결 불참을 택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국회 로텐더홀에서 규탄 대회를 열고 민주당의 ‘헌법 무시, 입법 폭거’에 항의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야당이 밀어붙인 법안들에 대해 “정부·여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상임위 단계부터 강행 처리된 정쟁용 좀비 악법”이라며 “결국 여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처리되는 쟁점 법안들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재표결 후 폐기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추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강력히 건의하기로 했다.
당초 국민의힘 내에서는 야당이 상정하는 법안마다 필리버스터에 돌입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필리버스터가 거대 야당의 표결 시점을 하루 정도 늦추는 효과만 있다는 회의론이 제기된 데다 김 여사의 명품 백 수수 의혹을 공개적으로 옹호하는 것도 의원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추 원내대표는 “휴일 동안 고심 끝에 결정한 사안이고 지도부 방침에 의원들도 공감하고 동의했다”며 “우리가 충분히 그 부당함을 설명했기 때문에 같은 것을 반복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판단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이날 통과된 법안들에 대해 또다시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로 되돌아올 경우 국정감사가 시작되는 10월 7일 이전에 신속하게 재표결을 진행해 공세를 이어갈 방침이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김 여사의 공천 개입 의혹이 여당 의원들의 재표결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또 앞서 예고한 대로 이달 26일로 예정된 본회의에서는 윤 대통령이 이미 거부권을 행사한 ‘노란봉투법’과 ‘전 국민 25만 원 민생지원금법’ ‘방송 4법’ 등의 재표결도 추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