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의 아이돌'로 불리며 86(80년대 학번·1960년대생 학생운동권) 그룹의 대표주자로 꼽혔던 더불어민주당 김민석(60) 최고위원과 임종석(58)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정면 충돌했다.
최근 임 전 비서실장이 "통일하지 말자.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는 주장을 한 데 대해 김 최고위원은 "김대중(DJ) 전 대통령이라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동조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두 사람은 학생 운동권 출신으로 DJ에게 전격 발탁돼 정계에 입문했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김 최고위원은 김 전 대통령의 전폭적 지지 속에 불과 28세 때 14대 국회의원 선거에 나갔다. 비록 석패했지만 4년 후 15대 총선에 승리하며 화려하게 여의도에 입성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김 최고위원은 2002년 38세로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에 선출되기도 했다.
임 전 실장은 1989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3기 의장을 맡아 임수경 전 의원의 '평양 축전참가'를 진두지휘했다.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며 운동권의 '스타'로 떠올랐다. 2000년에는 김 전 대통령의 '젊은 피 수혈론'에 힘입어 새천년민주당에 영입돼 16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15대 총선 최연소 당선자는 김 최고위원(32세), 16대 총선 최연소 당선자는 임 전 실장(34세)일 정도로 두 사람은 비슷한 여정을 밟았다.
하지만 2002년 대선의 노무현-정몽준 후보 간 단일화 국면에서 김 최고위원이 정 후보 측 '국민통합21'로 이적하면서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정치 행로를 달렸다.
당시 임 전 실장은 김 최고위원에 대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민의를 배반하는 철새 정치인"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두개의 국가’ 논쟁을 계기로 86그룹 사이에 분화가 촉발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그동안 당내에서는 86그룹이 자체적으로 정치적 동력을 만들기 쉽지 않은 여건이 됐다며 하나의 정치그룹으로서의 의미를 사실상 상실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진영 내 가장 민감한 이슈인 대북정책을 놓고 이견을 표출하면서, 이번 논쟁이 86그룹 내부 노선투쟁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