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국회 본회의를 열고 한 달 만에 77건의 민생 법안 합의 처리에 나섰다. 국가인권위원 선출안 표결에서 예상치 못한 부결이 나오며 한때 파행 위기를 맞았지만 민생 법안 처리를 더 늦추면 안 된다는 판단에 따라 여야는 늦은 시간까지 이들 법안에 대한 표결을 진행했다.
여야는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무차입 공매도를 막는 공매도 개선법을 비롯해 ‘딥페이크 범죄 방지법’ ‘아동·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법’ 개정안 등 77개 법안을 상정해 처리했다. 여야가 민생 법안을 본회의에서 합의 처리한 것은 지난달 28일 ‘전세사기특별법’ 등 28개 법안을 통과시킨 후 약 한 달 만이다.
공매도 제도를 개선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개인·기관투자가 간 공매도 거래 조건을 통일하고 불법 공매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 등이 담겼다. 입법이 완료된 성폭력범죄처벌법 개정안은 딥페이크 성착취물임을 알면서도 이를 소지·시청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성착취물을 이용한 아동·청소년 대상 협박·강요 범죄의 처벌 규정을 신설해 현행 성폭력처벌법보다 무겁게 처벌하도록 한 ‘아동·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 또한 처리됐다.
육아휴직 기간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배우자 출산휴가를 10일에서 20일로 늘리는 내용의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법’ 개정안도 의결됐다. 국가가 한부모가족에게 양육비를 먼저 지급한 뒤 비양육자로부터 나중에 받아내는 형식의 ‘양육비 선지급제’ 도입 근거를 마련한 양육비이행법 개정 역시 국회 문턱을 넘었다.
고의·상습적으로 임금을 주지 않은 사업주에게 체불액의 최대 3배까지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는 임금체불방지법(근로기준법 개정안)도 통과됐다. 개정안에는 상습 체불 사업주 중 명단이 공개된 사업주는 출국 금지와 신용 제재가 이뤄지고 이들에 대해 반의사불벌죄가 적용되지 않는 조항이 담겼다.
이날 본회의는 국가인권위원 후보 중 여당 몫 추천 인사인 한석훈 후보자 선출안이 찬성 119표, 반대 173표, 기권 6표로 부결되며 한때 정회되기도 했다. 야당 추천 인사인 이숙진 후보 선출안은 찬성 281표, 반대 14표, 기권 3표로 가결됐다.
예상을 깬 부결 사태에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기본적으로 인사에 관해서는 서로 합의하고 각자 추천했으면 존중해주는 게 관행”이라며 “(더불어민주당이) 일언반구도 없이 표결해 지금 이런 결과가 나왔는데 어떻게 의사 진행이 되겠냐”고 강도 높게 항의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에 “(인권위원 선출안을 두고) 당론을 결정하지 않았다. 국민의힘 뜻대로 의결이 안 되면 보이콧하냐”고 반박했다.
간신히 재개된 회의에서도 여야는 서로를 향해 “사기꾼”이라고 외치며 비난을 쏟아내기도 했다. 배준영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가 “얼마 전 경찰청에서 우리나라 사기 범죄가 점점 더 창궐해서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하는데 국회 본회의장에서도 사기를 당할 줄은 몰랐다”고 민주당을 비판하자 박성준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국민들은 윤석열 정권에 사기를 당했다고 외치는 상황인데 국민의힘만 모르냐”고 맞받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