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北 2006년부터 사실상 핵 보유국" 원자력기구 수장 발언 논란…한반도 안보 영향은

그로시 총장 "진지한 고민 필요"

러도 "비핵화 종결된 문제" 주장

국제사회 대북제재 명분 잃을수도

美양당, 정강정책서 北비핵화 제외

트럼프 참모는 韓방위비 증액 요구





국제 핵 통제 기구의 수장이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식하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발언을 내놓아 북한의 비핵화를 목표로 해온 국제사회의 대북 정책 기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과 공화당이 발표한 정강에서도 ‘북한의 비핵화’ 목표가 빠지면서 한반도 안보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가 북한의 비핵화는 ‘종결된 문제’라고 주장하면서 국제사회의 북핵 논의가 북한 정권의 시나리오대로 흘러갈 수도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26일(현지 시간)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2006년 ‘사실상(de facto) 핵보유국’이 된 후로 국제사회는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고 그 이후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크게 확대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이 핵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계속 강조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엇갈린 대화를 멈추기 위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북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와 국제법을 위반한 점은 비난받아야 마땅하지만 북한과의 대화 중단이 외려 상황을 통제 불가능한 상태로 악화시키고 있다는 우려를 드러낸 것이다.



그로시 총장은 “(북한과 대화하기 위해) 매우 신중하고 외교적인 준비가 필요하다”며 “(대화에 나설 시) 핵 안전 문제가 논의 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국제사회의 대북 정책 기조가 비핵화가 아닌 군축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의미를 담는다는 점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로시 총장은 특히 최근 북한의 핵 진전이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북한이 핵탄두를 30~50기 보유했다는 관측이 있다”며 “북한은 국제 핵 안전 기준이 지켜지고 있는지 확인이 불가능한 방대한 핵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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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핵 사용을 통제하는 IAEA 수장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식하는 발언을 내놓으면서 향후 국제사회의 북핵 대응 방향을 놓고 논란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할 경우 현재 유엔 안보리가 핵 개발 등으로 북한에 부과하고 있는 경제적 제재의 명분은 사라지고 북한이 핵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의 민주·공화당이 발표한 정강에서도 ‘북한의 비핵화’ 목표가 빠지면서 한반도 안보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역시 이날 “북한에 적용되는 비핵화라는 용어 자체가 모든 의미를 잃었으며 우리에게는 이미 종결된 문제”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IAEA의 북핵 결의안에 대해 거부한다는 뜻을 강조하며 “러시아는 미국이 한국과 일본에 제공하는 확장 억제(핵우산)에 맞서 북한과 함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각종 제재 속에서 북한과 밀착한 러시아는 올해 6월 북한을 방문해 양국 간 포괄적·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체결했다. 북한은 러시아에 전쟁 무기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핵심 참모였던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미국보다 앞선다며 미국의 핵무기 능력 강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그는 이날 워싱턴DC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우리는 지난 (트럼프) 정부에서 마침내 몇 개의 원심분리기를 가동하기 시작했다”며 “그러나 북한과 이란은 훨씬 더 많은 원심분리기를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한국의 방위비 증액을 요구했다. 그는 국방비를 미국처럼 국내총생산(GDP) 대비 3~3.5%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가 동맹(한국)과 부담을 분담할 수 있도록 방위비를 미국처럼 (GDP 대비) 3~3.5%까지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2기 출범 시 국무장관 후보로도 거론되는 오브라이언 전 보좌관의 이날 발언은 한국에 대한 방위비 증액 및 무역적자 해소 압박이 거세질 것임을 예고한다.

엘런 김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도 이날 발간한 ‘2024 미국 대선의 글로벌 영향’ 보고서에서 “(대미 무역흑자가 많은) 한국은 트럼프의 두 번째 임기 때 그의 조준선에 쉽게 놓일 수 있다”면서 “한국이 GDP의 2.8%를 국방비로 쓰고 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한국이 매년 부담하는 약 10억 달러 규모의 주한미군 주둔 비용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선임연구원은 또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한국을 ‘무역에서는 적, 안보에서는 무임승차자’로 보기 때문에 한국에도 10∼20%의 보편적 관세를 부과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를 위협하며 협정 개정을 추진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혜진 기자·워싱턴=윤홍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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