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근 조달청장이 30일 “공공주택 시공·감리에 대한 벌점 규정을 강화하면서도 입찰 계약까지 걸리는 시간을 평균 13일 단축했다”고 밝혔다.
임 청장은 정부대전청사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공공주택의 부실 문제는 시공 불량과 안전 미흡”이라며 “부실한 업체의 벌점 기준을 높여 하자를 미리 방지할 수 있도록 제도화했다”고 설명했다. 조달청은 지난해 4월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지하주자창이 붕괴하는 등 ‘순살 아파트’ 사태 이후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설계·감리·시공 업체 선정 권한을 넘겨받았다. 공공주택 건립을 전담하던 LH가 전관예우 등으로 논란에 휩싸이자 정부 차원에서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이다.
임 청장은 LH로부터 업무를 일부 넘겨받은 뒤 공정과 안전에 방점을 두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건설 업계는 신속한 입찰 필요성을 이유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했지만 대부분 벌점과 관련한 내용”이라며 “안전을 우선으로 해야 하는데 부실시공이 불 보듯 뻔한 업체에 벌점을 완화해줄 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조달청은 벌점을 강화하는 한편 조달 업무 시스템의 신속성을 십분 활용했다. 또 공공주택계약팀을 신설하고 시설 공사 분야 경력 우수 직원 16명을 배치해 전문성을 높였다. 그 결과 기존 LH가 하던 시스템보다 소요 기간이 20%가량 줄게 됐다. 임 청장은 “나라장터 시스템을 활용해 LH 계약 요청 즉시 입찰 공고를 진행했다”며 “입찰 과정을 유튜브로 생중계하고 있고 계약 시에는 청년 옴부즈만제도를 통해 모두 공개하는 등 투명성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조달청은 국내에서 우수한 기술을 보유한 업체의 해외 진출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임 청장은 5월 필리핀을 방문해 결핵이 유행하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게 됐다. 이후 필리핀 예산장관과 회동한 자리에서 국내 결핵 자가 키트 기업을 추천해 수출까지 이끌어냈다. 그는 “동남아 국가는 기술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고, 국내 혁신 기업은 해외 진출 창구가 여의찮은 게 현실”이라며 “우수 역량을 가진 기업의 해외 판로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해외 의사결정권자에게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출을 희망하는 기업은 직원 연수 프로그램도 제공하는 등 수출 마중물의 역할도 자임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을 바탕으로 지난해 해외 조달 시장에 진출한 유망 기업(G-PASS)은 16억 3000만 달러의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하게 됐다. 조달청은 올해 해외 수출 유망 기업에 대해 70억 원을 지원한 데 이어 내년에는 140억 원을 쏟아부을 예정이다.
벤처기업의 초기 판로 진입을 위한 지원도 강화하고 있다. 조달청은 청년·창업·벤처기업들의 진입 장벽을 완화하기 위해 전용몰인 ‘벤처나라’ 등록 기간을 5년에서 6년으로 연장하고 심사 주기도 격월에서 매월로 확대했다. 청년 창업 기업 육성 차원에서 수의계약 한도 역시 기존 2000만 원에서 5000만 원까지 올렸다. 또 현장 규제 85건, 장기 미해결 킬러 규제 17건 등 총 102건의 규제를 없애거나 개선 작업을 검토하는 등 기업의 요구 사항을 적극적으로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임 청장은 “공공조달의 가장 기본은 현장 목소리”라며 “조달현장혁신과를 신설해 전방위적인 조달 현장 의견을 수렴했고 규제 개선에 힘을 쏟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통상 질서 구축에 따라 경제안보의 핵심이 된 공급망 구축에 대해서도 소매를 걷어붙였다. 임 청장은 “원유 100%, 비철금속광 99.3% 등 에너지·비철금속 수입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은 한국은 글로벌 공급망 교란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공급망 안정은 우리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조달청은 이에 신규 비축 품목을 지속해서 발굴하고 비축 인프라 확충으로 대응력을 확대해나갈 예정이다.
조달청, 국립발레단과 홍보영상 협업…“숙명과 설명 실천”
“일반적으로 정부 기관 홍보 영상은 설득과 강요로 채워져 있습니다. 국립발레단과의 협업은 여기서 벗어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임기근 조달청장은 30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강수진 국립발레단장과 함께 만든 홍보 영상 ‘K-조달, The Next Stage’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이성과 논리에 기반한 공무원 특유의 설명조에서 벗어나 감성과 직관으로 국민에게 다가가는 취지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라는 설명이다. 임 청장은 “국민들의 문화적 감수성과 시각도 과거에 비해 상당히 높아졌다”며 “여기에 맞춰 조달청의 핵심 가치를 전달하려면 새로운 형식의 홍보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조달청의 홍보 영상에는 일반 시민들의 모습을 연출하는 단역배우나 전문 성우의 내레이션이 등장하지 않는다. “무대에 오르는 것은 혼자 하는 게 아니에요”라는 강 단장의 내레이션과 함께 변성완·조연재 국립발레단 솔리스트의 발레가 펼쳐진다. 훌륭한 발레 공연을 하는 데 필요한 △신뢰 △균형 △조화 △성장의 가치가 조달청의 비전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연출했다.
영상에 출연한 강 단장과 무용수들이 재능 기부 형식으로 참여한 것도 특징이다. 변 솔리스트는 ‘제25회 프랑스 그라스 국제발레콩푸르 그라스상’을, 조 솔리스트는 ‘2022년 한국발레협회 프리마 발레리나상’을 수상했다. 솔리스트는 발레 공연에서 단독 무용을 하는 등 주요 배역을 맡는 무용수를 일컫는 말이다. 임 청장은 “강 단장이 굉장히 성의를 다해 무대를 구성했다”며 “예술의전당 무대를 활용하고 공휴일에 시간을 내서 촬영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국립발레단이 처음부터 이렇게 적극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달청의 협업 제안에 국립발레단은 난색을 표했다. 국립발레단 입장에서 조달청은 생소한 정부 기관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임 청장은 강 단장을 직접 찾아가 설득전에 나섰다.
임 청장은 강 단장과 독대하는 자리에서 “좋은 제품을 만드는 기업들에게 공공판로를 개척해주고 이를 바탕으로 기업이 세계 시장으로 뻗어나가도록 돕는 것이 조달청의 미션”이라며 “발레 꿈나무를 육성해 세계적인 스타로 키우고 싶다는 강 단장의 비전과 지향점이 같다”고 설득했다. 좋은 발레 무대를 만들기 위해 무용수들 사이의 신뢰와 균형이 중요하듯 공공 조달도 조달기업과 사용기관을 조화롭게 연결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점도 덧붙였다. 홍보 영상에도 그대로 담긴 내용들이다. 임 청장의 설명에 강 단장은 그 자리에서 홍보 영상 협업을 승낙했다고 한다.
강 단장의 마음을 돌린 데는 임 청장의 평소 업무 신념인 ‘숙명과 설명’에서 비롯된 설득력이 역할을 했다. 임 청장은 “리더가 되면 조직원들을 다그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숙명”이라면서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설명과 소통이 충분해야 일이 원활히 돌아간다”고 말했다. 업무의 배경과 내용을 정확히 알려줘야 조직 전체가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직원과의 소통을 강조하다 보니 임 청장은 기획재정부 시절부터 조직 내에서 신망이 두텁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실제로 기재부 초임 과장 시절부터 직원들이 선정하는 ‘닮고 싶은 상사’에 세 차례 꼽혀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