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세미팔라틴스크






1949년 8월 소련이 카자흐스탄 동북부에 위치한 소도시 세미팔라틴스크의 외곽 초원 지대에서 핵실험을 처음 실시했다. 이 작전의 코드명은 ‘첫 번째 번개’라는 의미의 ‘퍼스트 라이트닝(First Lightning)’이었다. 당시 소련 지도자 이오시프 스탈린은 미국의 핵무기 개발에 대응하기 위한 핵 프로그램을 추진하면서 세미팔라틴스크를 실험장으로 낙점했다. 1차 핵실험은 성공적이었고 이후 세미팔라틴스크는 소련 핵무기 개발의 산실 역할을 했다. 1989년까지 소련이 실시한 총 715차례의 핵실험 중 456회가 이곳에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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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실험 과정에서 세미팔라틴스크와 인접 도시들은 방사성물질로 오염돼 ‘죽음의 땅’이 됐다. 주민들은 암·결핵·정신질환에 시달렸고 낙태와 기형아 출산율도 치솟았다. 핵실험의 여파로 세미팔라틴스크 인근에 생긴 커다란 인공 호수는 ‘원자력 호수(Atomic Lake)’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참혹한 현실에 분노한 카자흐스탄 국민들이 옛 소련 붕괴 이후 핵실험 반대 운동을 벌인 끝에 1991년 8월 29일 세미팔라틴스크 핵실험장은 영구 폐쇄됐다. 유엔은 이를 기념해 8월 29일을 ‘세계 핵실험 반대의 날’로 제정했다.

핵실험의 트라우마로 인해 원전에 대한 카자흐스탄 국민들의 정서는 그동안 좋지 않았다. 소련 시절인 1973년 지어진 악타우 원전이 1999년 노후화로 문을 닫은 후 원전 건설도 중단됐다. 하지만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현 대통령은 에너지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전 건설 재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원전 건설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6일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찬성표가 71.1%로 집계돼 카자흐스탄 정부가 추진하는 신규 원전 건설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핵실험 피해국까지 원전 재도입에 나서면서 글로벌 원전 건설 붐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AFP통신은 “한국 등이 카자흐스탄 원전 수주전을 벌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우리 정치권이 ‘저가 수주’ 논쟁으로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K원전 르네상스’를 초당적으로 지원해야 할 때다.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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