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핵 보유국일까? 아닐까?
지난 9월 26일(현지 시간)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규정한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의 발언이 만만치 않은 파장을 불러왔다.
AP통신과 인터뷰에서 그로시 사무총장은 북한이 2006년 ‘사실상 핵보유국’이 됐다고 규정하고 이를 전제로 협상과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이 인터뷰 발언에 대해 AP는 그로시 사무총장이 북한의 유엔 제재와 국제법 위반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겼다고 보도했다.
북핵 고도화에 대한 국제사회 우려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핵무기 확산 통제 를 위한 국제기구의 수장이 북한 핵 보유를 현실로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으면서 논란이 된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에서는 그간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도발을 복수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 위반으로 규탄하고 각종 제재를 이어가면서도 북한을 실질적 핵보유국으로는 인정하지 않아 왔다. 따라서 그로시 사무총장의 발언은 국제 사회의 기존 입장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셈이다.
논란이 커지자 IAEA는 불법적인 북한 핵 프로그램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자는 뜻이었다고 해명했다. 프레드릭 달 IAEA 대변인은 “그로시 사무총장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가 가진 유효성을 거듭 강조하면서도 (북한과) 대화 필요성을 주장한 것”이라며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군축 문제를 협의할 대상으로 보자는 게 아니라 북한의 불법적인 핵 프로그램을 되돌려놓기 위해 현지 사찰을 가능하도록 대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인터뷰”라고 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9월 26일 북한이 오는 11월 미국 대선 이후 7차 핵실험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국정원은 국회 정보위 전체회의에서 북한 7차 핵실험 여부에 대한 질의에 “미국 대선을 앞두고 할 가능성이 있지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공위성 발사 등 다양한 군사적 도발 수단이 있어서 미국 대선 이전보다는 이후가 될 수 있다”며 이 같이 보고했다.
그러면서 국정원은 북한의 핵 능력에 대해선 플루토늄 약 70㎏, 고농축 우라늄 상당량을 보유하고 있고 이는 두 자릿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이라고 분석했다. 국정원의 보고가 맞다면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라고 해석할 수 있다.
최근에는 북한이 잠수함 관련 시설 밀집 지역에서 대형 잠수함을 건조하는 정황이 포착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우리 군 당국은 원자력 추진 잠수함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관련 정보를 분석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군은 이 잠수함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언급한 '핵추진잠수함'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원자로 등 원자력 추진 잠수함에 들어가는 핵심 장비는 아직 북한이 구비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하면서도, 기존 기종보다 커진 잠수함 크기 등으로 미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지난 9월 2일 김 위원장이 서부지구의 조선인민군 특수작전부대 훈련기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북핵에 강한 경고 메시지를 날린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핵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의 문전에서 군사력의 압도적 대응을 입에 올렸는데, 뭔가 온전치 못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사지 않을 수 없게 한 가관”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그러면서 “핵보유국과의 군사적 충돌에서 생존을 바라여 행운을 비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할 부질없는 일”이라며 “그러한 상황이 온다면 서울과 대한민국의 영존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위협하며 핵보유국임을 강조했다.
사실 국제사회에서 ‘핵보유국’으로 공식 인정받은 국가는 핵확산금지조약(NPT) 제9조 3항에 규정된 5개국이다. 세계 최초로 핵실험에 성공한 미국(1945년) 그리고 미국과 경쟁한 소련(1949년)에 이어 영국(1952년), 프랑스(1960년), 중국(1964년) 등이다.
특히 NPT는 기존 핵보유국(P5)에는 핵확산을 못 하게 하는 동시에 비핵보유국은 핵보유국으로부터 핵무기나 핵제조 관련 기술을 이전받지 못하게 했고 자체 핵개발도 할 수 없도록 규정해 현재까지 이 같은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국제사회 우려에도 NPT를 무시하고 핵 개발을 강행해 이들 5개국 외에 이스라엘과 인도, 파키스탄은 현재 ‘사실상(de facto) 핵보유국’으로 분류된다. 이들 3국은 비밀리에 핵개발에 나서 자체 핵실험에 성공했고, 각자 다른 과정을 거쳐 미국에 의해 핵무기 보유를 묵인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재 국제사회에서 핵보유국 인정 받지 못하고 논란이 일고 있는 나라가 바로 북한이다. 북한은 지난 2017년 핵무력 완성을 선포했다.
스웨덴 싱크탱크인 스톡홀롬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2024년 6월 연례 보고서에서 핵무기 현황과 관련해 북한이 이미 핵탄두 50기를 조립했고, 핵탄두 90개를 조립할 정도의 핵분열 물질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 추정이 맞다면 북한은 실체적인 핵보유국인 셈이다.
이처럼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국 지위 인정은 하지 않고 있다. 특히 미국은 물론이고 NPT는 어떤 경우에도 북한의 핵무기 보유국 지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확실히 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제11차 NPT 평가회의 1차 준비위원회에 참석한 마욜린 판 딜렌 유럽연합(EU) 군축·비확산특별대표는 “북한은 NPT에 따른 핵무기 보유국 지위 또는 그 어떤 특별한 지위도 가질 수 없으며 앞으로도 결코 갖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북한의 핵보유국 문제에 대해 유대 관계에 있는 중국과 러시아는 서방과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의 패권 경쟁 이후 북한 핵개발을 문제삼기 보다는 북한과 연대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북한 역시 중국과 러시아의 비호 속에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는 계속 시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7차 핵 실험 도발에 나설 경우,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규정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지형에서 북핵에 대한 접근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한미 당국 모두 그동안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분명한 정책 목표로 추진하고 있지만,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규정하는 순간 협상은 비핵화가 아닌 군축 및 통제의 완전히 다른 틀로 근접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