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간 서울 강북 14개 자치구의 인구가 10%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의 인구가 5% 늘어난 것과 대비되는 결과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시절 이른바 ‘뉴타운 출구전략’으로 정비사업이 대거 중단되면서 주거지역이 노후화된 데 따른 여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10일 통계청에 따르면 서울 강북 14개 자치구의 인구는 2004년 510만 명에서 2024년 443만 명으로 13% 감소했다. 이는 같은 기간 서울의 인구 감소 폭(-8%)을 웃도는 수치다. 반면 강남 3구의 인구는 2004년 154만 명에서 2024년 162만 명으로 5% 증가했다. 자치구별로 보면 강북구·노원구의 인구 감소 폭이 21%로 가장 큰 가운데 도봉구(-20%), 성동구(-19%) 등이 뒤를 이었다.
부동산 업계는 아파트가 노후화되고 관련 인프라가 부족해지면서 강북권의 인구 감소 역시 가팔라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해 말 도봉구 지역 내 총 9만 2684가구 중 57%인 5만 2829가구가 준공 30년을 초과한 노후 아파트다. 노원구도 해당 비중이 55%에 달한다. 반면 강남구와 송파구의 준공 30년 이상 아파트 비중은 각각 39%, 32%에 불과하다.
강북 14개 자치구의 인구는 2005년까지만 해도 508만 명에 달했다. 그러나 2012년 494만 명으로 500만 명 선이 무너지기 시작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강북권 인구 감소의 요인 중 하나는 정비사업 제동이 꼽힌다. 박 전 시장은 2012년 재정비촉진사업(뉴타운)·정비구역으로 지정된 1300개 구역 중 사업 시행 인가 이전인 600여 개 구역에 대한 사업성 재검토에 착수했다. 추진위원회나 조합만 설립돼 사업의 별다른 진척이 없는 구역 중 토지 등 소유자 10~25% 이상이 동의할 경우 실태 조사를 거쳐 뉴타운 지정 해제를 추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는 정비사업에 따른 주민 간 갈등을 최소화하고 세입자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이 같은 정책 추진으로 약 5년 8개월간 683곳 중 365곳의 뉴타운·정비구역 지정이 해제됐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 성북구 장위뉴타운이다. 총 15개 구역 중 6곳이 일몰제 등으로 대거 뉴타운에서 해제되며 ‘반쪽짜리 뉴타운’으로 전락했다. 종로구 창신동 23번지와 숭인동 56번지 일대도 마찬가지다. 이 구역은 2007년부터 뉴타운이 추진됐지만 2013년 촉진지구가 해제됐다. 대신 ‘1호 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지정돼 8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 골목 벽화 그리기 등 사업을 전개했지만 주거 환경이 개선되지 않아 주민들의 불안이 컸다.
뉴타운·정비구역에서 해제된 지역들은 이제 겨우 재개발 사업에 시동을 걸고 있다. 서울시는 8월 도시계획위원회를 열고 창신동 24번지와 숭인동 56번지 일대 재개발 정비구역 지정 및 정비계획 결정안을 수정 가결했다. 이곳에는 총 2000여 가구 규모의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장위15구역도 지난달 총 3317가구 규모로의 재정비촉진계획 변경을 결정했다. 종로구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그야말로 잃어버린 10년”이라며 “정비사업 재추진을 기다리다 범죄 우려 등에 떠난 주민들이 많다”고 전했다.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정책에 혈세가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주최한 ‘2021년 부동산 포럼’에서 “박 전 시장 시절인 2014년 전후 서울시의 정비사업 출구전략에 따른 사회적 기회비용이 연간 5000억 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공사비 급등에 재건축·재개발 사업성이 낮아지면서 앞으로도 강북권 인구 감소세가 상대적으로 집값이 높은 강남권보다 가파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서울시 공공데이터에 따르면 이달 기준 강북 14개 자치구에서 정비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사업장(사업 시행 인가 이전)은 총 244개다. 강남 11개 자치구는 이보다 많은 299개로 집계됐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신축과 한강변 아파트가 많고 인프라가 우수한 강남권으로 인구 쏠림 현상이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