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이 불확실해지면서 요즘 학원가에서는 (의대) 홍보를 잘 안 합니다. 입시설명회에서도 의대는 거론되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의 의대 정원 방침에 대해 못 미덥다고 얘기하는 학부모들도 많습니다.”
교육 1번지로 불리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입시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A 대표는 “학원가가 조용해졌다”며 최근 달라진 학원가의 분위기를 전했다.
5월 의대 정원 증원 규모가 확정되면서 대치동 유학 문의가 급감했다. 오히려 지방 유학을 문의하는 학부모들이 증가했다. 의대 정원 증원과 맞물려 지역인재전형 선발 정원이 늘어나 지방 의대 문턱이 낮아지면서 ‘서울 이주’ 계획을 철회하는 학부모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17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문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은 ‘2024∼2026학년도 의대별 지역인재전형 비율’에 따르면 비수도권 의대 26곳의 2025학년도 지역인재전형 선발 비율은 59.7%다. 50%였던 2024학년도와 비교하면 10%포인트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2026학년도 지역인재전형 선발 비율은 61.8%로 2025학년보다 더 늘어날 예정이다. 정부가 의대 증원을 추진하면서 비수도권 의대에 지역인재전형 선발 비율을 60% 이상으로 높일 것을 권고했기 때문이다. 지역인재전형은 지역 학생들의 수도권 이탈을 완화하기 위해 2014년 도입, 2016학년도 대입부터 시행된 제도다. 의대가 위치한 지역의 고등학교에 입학해 3년을 다니고 해당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만 지원할 수 있다. 현행 ‘지방대육성법’에 따라 비수도권 의대는 의무적으로 신입생의 40% 이상(강원·제주권 20% 이상)을 지역인재전형으로 선발해야 한다. 지역인재전형 비율이 높아지면서 학원가에서는 강남 쏠림 현상이 완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의정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정부가 의정 갈등을 풀기 위해 2026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증원 무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되면서 지방 유학 문의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렇다고 대치동 이주 상담이 늘어난 것은 아니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재검토 발언 이후 입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학부모들이 의정 갈등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의대 증원 드라이브에 제동이 걸리면서 강남 집중 현상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A 대표는 “의대 정원 증원이 예측 불가능한 일이 됐다”며 “학령인구 감소로 강남이 2000년 초반과 같은 지위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교육특구 위상은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현 중학교 3학년부터 적용되는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안까지 감안하면 강남 집중 현상이 더 심화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교육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안에 따르면 고교학점제 불공정 논란을 해소하면서 변별력 확보를 위해 고교 내신은 5등급 절대평가제로 전환된다. 다만 성적 부풀리기 등의 우려를 감안해 5등급 상대평가도 병행한다. 이에 따라 내신 1등급을 받는 학생 비율이 현재 4%에서 앞으로는 10%로 2배 이상 증가하게 됐다. 상대적으로 내신 1등급을 받기 쉬워진 것이다. 그간 강남 3구 등 특정 학군지 학생들은 내신 경쟁이 치열해 학교를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 지난해 고등학교를 그만둔 학생 수가 최근 5년 사이 최고치를 기록했다. 종로학원이 대학알리미에 공시된 전국 2379개 고교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자퇴 등으로 학교를 그만둔 학생은 총 2만 5792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체 고교 재학생(127만 6890명)의 2.0%다. 학업을 중단한 고교생은 2019년 2만 3812명(1.7%), 2020년 1만 4455명(1.1%), 2021년 2만 116명(1.5%), 2022년 2만 3980명(1.9%)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고교 유형별로는 일반고에서 1만 7240명이 떠나 전년(1만 5520명) 대비 11.1% 늘었다. 자율형 사립고에서도 전년(338명)보다 11.8% 늘어난 378명이 지난해 학교를 그만뒀다. 외국어고와 국제고를 그만둔 학생은 366명으로 전년(317명) 대비 15.5% 늘어나 증가 폭이 가장 컸다.
특히 서울에서는 강남 3구가 학업 중단 비율이 가장 높았다. 지난해 일반고 기준 강남구(2.68%), 서초구(2.68%), 송파구(2.17%)의 학업 중단 비율 모두 전체 평균(2.0%)을 훌쩍 넘었다.
한 입시 전문가는 “의대 정원 증원이 불확실해지면서 지역인재전형도 물음표가 됐다”며 “수능이라는 관점에서만 보면 교육 인프라가 훌륭한 강남과 같은 학군지에서 공부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밝혔다.
이어 “이전에는 학군지 내에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많아 내신 1등급을 얻기가 어려웠지만 대입 개편으로 교과에서도 좋은 성적을 얻기 쉬워졌다”며 “결론적으로 보면 ‘강남 불패’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어떤 의미로는 더 심화할 수도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