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지난 21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던 의무공개매수 제도에 대한 논의에 다시 불이 붙는 건 고려아연과 영풍·MBK파트너스 간 분쟁 여파로 경영권 프리미엄에 대한 시정 여론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왜곡된 경영권 프리미엄 구조에 일반 주주들과 정치권의 주목도가 높아진 만큼 이참에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현상)’ 요인을 확실히 바로잡겠다는 각오다.
20일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최근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금융위가 의무공개매수 제도 도입 검토에 속도를 붙인 가장 큰 계기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시장 참여자 대다수가 경영권이 포함된 거래와 그렇지 않은 매매 간 주가 차이가 매우 크다는 점을 재확인하고 이 부분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원인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게 됐다는 이유에서다. 의무공개매수 제도 도입으로 지지부진한 밸류업(기업 가치 제고) 정책 효과를 제고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경영권 프리미엄은 회사 경영권이 걸린 주식을 매매할 때 시장 가격에 덧붙이는 웃돈을 뜻한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일반주주가 공유받지 못할수록 주주평등 원칙은 훼손되고 대주주와 개인투자자가 참여하는 주식시장이 이중구조로 양극화될 수밖에 없다. 세계적으로는 적정 경영권 프리미엄을 시장가의 20~30% 수준으로 보지만 유독 한국에서는 이보다 더 높게 책정하는 경우가 많은 상황이다. 금융 당국과 상당수 증시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지배주주가 평소에는 상속세 등에 유리하도록 주가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다가 경영권 분쟁이 발생했을 때에만 자기 지분 가치를 시장가보다 높게 평가하는 결과로 보고 있다.
실제 공개매수 경쟁이 시작되기 직전 55만 원 수준에 머물렀던 고려아연의 주가도 회사가 매수가격을 83만 원으로 올리자 지난 18일 82만 4000원까지 급등했다. 이는 고려아연이 경영권 분쟁이 있기 전까지 적정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점을 시사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한양증권 관련 인수합병(M&A)도 경영권 프리미엄 거래로 주가가 재평가받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한양증권은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1주당 1만 원을 밑돌아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34배에 불과한 저평가 종목으로 분류됐다. 그러다가 올 8월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KCGI가 이 증권사를 지분 29.59%를 주당 5만 8500원(총 2203억 6792만 500원)에 매수하기로 하면서 그 가치가 재조명됐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하니 대주주 지분 가치만 이달 18일 한양증권 시장가(1만 2520원)의 5배에 육박하는 가격으로 치솟았다.
당국과 업계는 의무공개매수 제도 도입으로 과도한 경영권 프리미엄이 유발하는 증시 저평가 현상을 일부 해소할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코스닥시장에서 지분 일부만 싸게 인수해 전환사채(CB) 등을 무차별적으로 발행하는 사익 편취 사례를 방지할 수 있다는 점도 기대 요소로 꼽았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대 교수가 1980~2022년 41개 국의 지배권 인수 사례 1421건을 분석해 지난해 공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의무공개매수 제도 도입 이후 각 나라 기업의 경영권 프리미엄은 평균 20%포인트 감소했다.
업계에서는 금융위가 21대 국회 회기인 2022년 12월 발의했던 안과 거의 비슷한 수준에서 의무공개매수 제도를 재추진할 것으로 내다봤다. M&A로 지분 25% 이상을 보유해 최대주주가 된 경우 잔여주주를 대상으로 총 지분의 ‘50%+1주’를 의무적으로 공개매수하게 하는 쪽으로 입법 방향을 좁힐 것이라는 예상이다. 2년 전에는 윤창현 전 국민의힘 의원(현 코스콤 사장)이 윤석열 대통령의 후보자 시절 공약을 반영해 해당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가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자동 폐기된 바 있다.
업계는 또 현 국회에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이미 있다는 점에서 의무공개매수 추진 자체에 대한 여야 간 이견은 크지 않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강 의원안은 최대주주 여부와 관계없이 지분 25% 이상을 취득한 경우 잔여 주식 100%를 같은 가격에 모두 사들여야 한다는 점에서 정부 추진안보다 조금 더 급진적인 형태를 띤다. 강 의원안에는 공개매수 의무 위반시 의결권 제한, 금융위 처분 명령 등의 제재를 받는 방안까지 포함됐다. 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주주 입장에서 경영권을 방어하는 효과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 제도로 M&A 시장 자체가 위축될 것이라는 재계와 사모펀드 업계의 우려는 걸림돌이다. 아울러 M&A 매물이 자칫 자본이 풍부한 해외 기업에만 인수될 수 있고 기업 구조조정이 비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찮게 나오고 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 관계자는 “비용을 과도하게 늘려 M&A을 억제할 수 있고 자금력이 약한 국내 기업에 역차별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지배주주의 경영권 프리미엄은 장기 실적 개선을 위해 위험을 감수한 보상으로 일반주주의 이익과는 구분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