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골프 골프일반

김민별 "느리지만 꿋꿋이…목표 향해 걷는 거북이 될래요"

◆'우승 없는 신인왕' 꼬리표 뗀 김민별 18문18답

머리 미동없는 스윙자세 입소문

숏폼 조회수 60만회 넘어 대박

'독기 부족하다' 평가 들었지만

독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 없어





국가대표 출신으로 시드전 수석 타이틀을 달고 지난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 데뷔한 김민별(20·하이트진로). 그에게는 딱 한 가지가 없었다. 바로 우승. 준우승도 세 번이나 있었고 3등도 두 번이었는데 우승까지는 가지 못했다. 대신 꾸준함을 무기로 황유민·방신실 등 강력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신인상 타이틀을 따냈다.



‘우승 없는 신인왕’으로 한 해를 지낸 김민별은 올해 마침내 별 하나를 달았다. 공격 골프가 아니면 어렵다는 변형 스테이블포드 방식(이글 5점, 버디 2점 등)의 대회에서 이달 트로피를 든 것이다. 이제 김민별에게는 꾸준함에 한 방까지 갖춘 선수라는 수식이 따라붙는다. 수많은 축하 중에서 ‘잘 이겨냈다’ 이 말이 제일 와 닿았다는 김민별. 느리지만 꿋꿋한 ‘거북이’로 불리고 싶다는 그를 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 현장에서 18문 18답으로 만났다.



-스윙 동작 중 머리를 고정하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에요. 김 선수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연습장 스윙 영상 하나가 숏폼으로 재생산됐고 조회 수가 60만이 넘더라고요. ‘스웨이’와 ‘헤드 업’이 고질병인 주말 골퍼들 사이에 감탄이 자자하고요.

△그렇게 퍼져서 많이 보시기를 의도한 것은 아닌데 어쨌든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으니 감사해요. 그 포인트에 신경을 쓰는 게 있다면 볼을 끝까지 보는 거예요. 머리를 잡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볼만 끝까지 보겠다고 생각하고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머리도 끝까지 잡힐 거예요.

-투어 수준의 선수라면 헤드 업을 걱정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김 선수의 스윙은 유독 기본이 철저하게 지켜지는 이상적인 스윙이라는 평가가 많아요.

△어릴 때부터 기본에 충실하자는 주의이기는 했어요. 스스로는 장점이 많이 없다고 느끼는데 머리가 끝까지 잡히는 것은 저의 유일한 장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요.

-가진 기량에 비해 우승이 늦게 나왔다는 얘기가 많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나요.

△저 스스로도 기대했던 것보다는 좀 늦게 우승이 나왔다고 느끼고 있어요. 지난해에도 우승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못했고. 근데 지난해에는 루키 신분이기도 했고 뭔가 우승에 대한 부담 같은 것은 없었어요. 올해는 좀 달랐죠. 자신감을 키운 상태로 ‘올해는 우승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시작을 했기 때문에 더 우승이 늦게 찾아왔다고 스스로 느끼나 봐요.

-지난해 두 번의 연장전 패배 때는 불운도 따랐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볼이 디봇(잔디의 팬 자국)에 빠져서 어려움이 있기는 했어요. 운이 조금 안 좋았다는 생각인데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에 그런 상황을 이겨내는 것 또한 제 몫인 거잖아요. 결과적으로 이겨내지 못한 게 제가 부족했던 부분이라고 받아들였어요.

-우승 직후 방신실 선수와 포옹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방 선수는 갑상샘 질환으로 고생할 때 김 선수의 존재가 큰 힘이 됐다고 서울경제 골프먼슬리 인터뷰 때 말한 적도 있고요.

△라이벌이라는 소리도 듣기는 했지만 늘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사이예요. 서로 웃기기도 하고 안 될 때 의지도 하는 굉장히 친한 친구 맞아요. 이번 우승 때 신실이도 우승 경쟁하는 위치에 있었는데 그럼에도 진심으로 축하해줘서 너무 고마웠죠.

-인스타그램 보니까 레전드 선수인 이보미의 우승 축하 글도 눈에 띄더라고요.

△보미 언니는 같은 강원도 출신이기도 하고 지난해 ‘맞수한판(시즌 중 휴식기에 케이블 골프 채널에서 진행하는 이벤트 경기)’ 나갔을 때 같은 팀이기도 해서 친해졌어요. 정말 레전드인 선배님인데도 저를 늘 잘 챙겨주시고 항상 응원도 해주셔서 든든합니다.

-여자 골프에서 최고 무대라고 하는 US 여자오픈을 올해 처음 경험했죠. 그 경험이 성장의 계기가 됐다고 봐도 되나요.

△맞아요. 정말 좋은 시간이었어요. 거기서 했던 경험들이 저한테는 너무 새로웠거든요. 세계적인 선수들이 다 있고 가본 코스 중에 가장 어려웠던 코스(랭커스터CC)이기도 해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값진 경험이었고 1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하루하루가 다 좋아서 시간이 굉장히 빠르게 흐른 느낌이었어요.

-거기서 샷 이글도 했잖아요.



△제가 친 위치에서는 상황이 잘 안 보여서 그냥 ‘오, 핀 쪽으로 잘 갔네’ 했는데 그쪽에서 사람들이 막 환호하기에 ‘들어갔구나’ 했죠. 굉장히 짜릿했어요. 그 볼은 지금 갖고 있지는 않고 현장에서 사인해서 팬한테 건네줬어요. 대신 주최 측에서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렸고 또 많은 사람들이 봐주셔서 감사했어요.

관련기사



-US 여자오픈(공동 26위)을 통해 자신감도 많이 얻었을 텐데 미국 진출 계획이 있다면 어떻게 진행할 생각인가요.

△도전해보고 싶기는 한데 영어를 포함해서 한국에서 준비가 됐다고 생각할 때 도전하지 않을까 해요. 간다면 빠른 게 좋기는 하겠죠. 하지만 아직 세부 계획은 없습니다. 일단 한국에서 우승을 더 하고 스스로 준비가 됐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게 우선이지 싶어요.



-선배인 박현경 선수도 첫해 우승이 없다가 이후 우승이 터지기 시작했고 이예원 선수도 ‘우승 없는 신인왕’이었다가 2년 차부터 몰아쳤어요.

△맞아요. 그래서 두 언니와 관련해서 응원을 자주 받았어요. ‘2년 차에는 이예원 선수처럼 할 수 있을 거예요’ 하는 식으로요. 근데 올 시즌 치르면서 ‘아, 이게 정말 어려운 거구나’ ‘예원 언니 역시 대단한 선수구나’ 새삼 느끼게 됐죠. 다행히 우승이 나와줘서 그나마 자신감을 찾기는 했어요. 현경 언니는 그동안 제가 잘 안 될 때 한마디씩 툭툭 해주시면서 현실적으로 좋은 얘기를 많이 건네주셨어요.

  • -아버지(카누 국가대표 출신 김판형 씨)가 어릴 적 카누나 다른 운동을 시키려고 하지는 않으셨나요.


△전혀 없었어요. 저는 어릴 때(초등 1년 무렵)부터 골프를 시작했기 때문에 다른 쪽은 아예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미 국가상비군을 지낼 정도로 인생이 골프였죠. 골프가 아니었으면 지금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요.

△저는 공부도 못하기 때문에.(웃음) 지금보다 더 좋은 직업을 갖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정말이지 ‘골프를 해서 참 다행이다’ 이런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입스(샷 하기 전 불안증세)나 부상 경험은 거의 없었나 봐요.

△중간에 골프가 잘 안 됐던 때는 분명히 있었지만 입스 수준까지는 가지 않았어요. 부상은 국가대표 지낼 때 시즌 중에 발목을 삐어서 두 달 동안 깁스했던 게 가장 큰 부상이에요. 재활을 잘해서 지금은 전혀 문제없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이럴 때 나 좀 독한 것 같다’ 싶을 때가 있나요.

△‘독하다’ ‘독기’라…. 사실 저랑은 좀 거리가 먼 말들이에요. 좀 독해지라는 얘기를 많이 듣거든요. 그게 스트레스일 정도로요. ‘내가 그렇게 독기가 없는 건가’ ‘보이는 이미지가 그런 건가’ 곰곰이 생각하게 돼요. 그러다 ‘어느 정도의 독기는 저한테도 분명히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흐르게 되고요. 연습량과 독기를 관련 지어 보려면 모든 선수들이 정말 열심히 매달리는 순간이 다들 있을 테니 말하기는 민망해요. 아, 저 이런 건 있어요. 시드전이나 시드전 형식의 경기에서 성적이 좀 좋았어요. 아시안게임 선발전도 그 중 하나였고요. 그런 부분을 보면 또 독기가 있었으니까 가능한 결과가 아니었나 싶기도 해요.

-가장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은요.

△워낙 뭐 보는 걸 좋아해서 넷플릭스 추천 받은 것들은 다 봤어요. 유튜브는 ‘먹방’ 콘텐츠를 보는데 밥 먹을 때만 봐요. 이상하게 남이 먹는 영상을 보면 영상 속 음식은 별로 맛 없어 보이고 지금 제가 먹는 밥이 더 맛있어지는 그런 게 있더라고요.

-생활 속에서 ‘내 발작 버튼은 이거다’ 하는 건.

△친구나 친한 언니들이 어깨 얘기를 많이 해요. ‘어깡(어깨 깡패)’ ‘수영선수’라면서. 그거에 제일 발끈하는 것 같기는 해요. 근데 뭐 하도 얘기를 많이 들어서…. 어깨 운동을 많이 한 것도 아닌데 그냥 타고난 듯합니다.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랍니다.

-김민별 골프를 상징하는 키워드 하나를 꼽자면.

△차분함을 장점으로 말해주시는데 음, 저는 ‘거북이’라고 하고 싶어요. 우승을 늦게 하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느리지만 꿋꿋이, 그리고 열심히 제가 가고 싶은 길을 향해 간다는 그런 느낌으로요.

-미리 그려보는 나의 3년 차는.

△1년 차에 비해 2년 차에 성장한 부분이 있어요. 3년 차에는 지금 부족한 부분, 그러니까 약간 골프 테크닉적인 요소에도 업그레이드가 있으면 해요. 경기 하면서 겪게 되는 상황들에 멘탈적으로 잘 이겨낼 수 있는 힘도 길러졌기를 바라고요. 그래서 좀 더 강해진 제가 되면 좋겠습니다. 부족한 부분들이 메워져서 단단해지면 좋겠다, 그렇게 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용인=양준호 기자 사진=오승현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