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경구 가운데 ‘매너 메이크 맨(Manners make the man)’이라는 말이 있다. 언어유희지만 결국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다. 그러면 여기서 매너는 무엇일까. 혹자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행동이라고 한다.
매너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른 형태를 띤다. 한편으로 제대로 된 인간을 만든다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서는 인간 간에 구별 짓는데 사용되기도 했다.
신간 ‘매너의 역사-품격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매너의 역사이자 사회사다. 연세대 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서양 사회의 에티켓북과 처세서, 행동지침서, 편지, 매뉴얼 등 고대부터 20세기까지 생산된 굵직굵직한 예법서 100여 권을 분석해 매너의 역사를 정리했다.
저자의 문제 제기는 역사학의 전통에서 매너가 그간 사소하고 하찮은 주제로 폄하돼 연구 성과가 미진하거나 혹은 특정 시기에 한정돼 왔다는 점이다. 이런 연구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저자는 노련한 역사학자의 시선으로 기원전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20세기 말까지 긴 시간을 아우르며 매너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주로 관념적인 차원에서 매너에 접근하는 기존 연구들과는 다르게 구체적인 행동 지침과 그 양태를 집중적으로 살피고 분석했다.
서양 매너의 이론을 정립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도시 시민의 보편적 윤리라는 측면에서 시작해 고대 로마의 키케로에서 엘리트 자격으로서의 성격, 그리고 중세의 귀족 기사도, 에라스뮈스와 로크의 예절 교육, 18세기 영국식 신사의 매너와 젠틀맨다움을 거쳐 상류사회의 엄격하고 까다로운 에티켓으로의 퇴행까지 끌어낸다. 개인화된 20세기 에티켓까지도 담아냈다.
저자는 각 시대가 만들고 유지해온 매너의 이상이 사회·경제적 변화와 조응해 행동 규범에 관한 일종의 유행을 창출했음을 확인한다. 역사적으로 매너는 자신이 속한 계층과 계급의 집합적 정체성을 대변해 봉건적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고 규범을 강제하는 역할을 강화했다.
다만 현대 사회에서는 매너가 급변을 겪고 있다. 현대 매너는 기존 집단화에서 개인화되고 또 규제보다는 사회적 자본 역할로 변화하는 중이다. 하지만 저자는 엘리트층에 더 우월한 매너를 요구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고 강조한다. 3만 8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