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집권 자민당이 27일 치러진 중의원 선거(총선)에서 단독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이시바 시게루 신임 총리에 대한 책임론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자민·공명 여당 연합으로도 과반 확보가 위태로운 만큼 이시바 내각의 정책 동력이 크게 약해지는 것은 물론 총리가 리더십 위기를 맞으며 단명할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27일 NHK의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전체 465석 중 153~219석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선거 전의 247석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이자 과반 의석(233석)을 밑도는 수준이다. 자민당은 민주당으로 정권을 탈환한 2012년부터 2014년·2017년·2021년 등 4차례의 중의원 선거에서 연이어 단독 과반을 확보해왔다. 자민당과 연정을 이루고 있는 공명당도 21~35석이 예상돼 이날 오후 10시 현재 자공 연합으로도 과반 확보가 위태로운 상황이다. 아사히신문의 출구조사에서는 자민당 185석, 공명당 26석 전후가 전망돼 두 당의 의석수를 합쳐도 과반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사히는 “자민·공명으로 과반 미달은 민주당으로의 정권 교체가 있었던 2009년 이래 15년 만”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정권 교체’를 내걸었던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선거 전의 98석을 훨씬 뛰어넘는 128~191석이 예상(NHK)됐으며 국민민주당 역시 기존 7석에서 세를 불려 20~33석(NHK)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파벌에 의한 ‘비자금 스캔들’ 역풍 속에 ‘쇄신’을 내걸고 취임한 이시바 총리는 취임 후 최단 기간(8일) 중의원 해산이라는 승부수를 던졌지만 선거 기간 비자금 이슈를 둘러싼 공천 갈등, 파벌 중심 활동 등 고질적 문제로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다.
◇초반부터 ‘과반 붕괴’ 패색=자민당 총재인 이시바 총리는 선거 목표 의석수를 자민·공명 합계 ‘과반 의석’으로 제시했다. 비자금 스캔들로 인한 민심 이반을 반영해 보수적으로 잡은 목표치다. 하지만 유권자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당의 조치가 미온적인 데다 관련자들에 대한 공천 배제를 둘러싸고 총리가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쇄신’ 이미지마저 퇴색됐다. 특히 선거 막판 공천 배제 인사들이 대표를 맡은 지부에 당에서 2000만 엔씩 지원금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국민 속이기’라는 비판까지 일었다. 출구조사 발표 직후 고이즈미 신지로 자민당 선거대책위원장은 “정치와 돈 문제(비자금 스캔들)를 매듭짓지 못해 매우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물가 불만에 내각 지지율 최저=당초 이시바 총리가 최단 기간 중의원 해산에 나선 데는 ‘내각 출범 초 허니문 효과’를 최대한 발휘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이시바 내각의 지지율은 출발 한 달도 안 돼 데드크로스 상태에 놓였다. 아사히신문이 19~20일 전국 유권자 1만 9633명을 대상으로 전화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시바 내각을 ‘지지한다’고 답한 사람이 33%로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39%)을 밑돌았다. 미흡한 당 쇄신 조치에 더해 고물가 대책에 대한 누적된 실망감이 민심 이반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시바 책임론, 실패 마지노선은=자민당에서는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 전에 ‘선거의 새 얼굴’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올 가능성이 적지 않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중의원 선거에서의 ‘선거의 얼굴’로 선택된 총리가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냈다면 여당 내에서 교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고 봤다.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총리와 결선까지 갔던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과 그를 지원했던 옛 아베파, 아소파 등이 주도권 확보를 위해 목소리를 키울 수도 있다. NHK는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이시바 총리와 당 집행부의 책임론이 부상할 수 있다”고 당 안팎의 분위기를 전했다.
◇야당 목소리 커지나=야권의 목소리에 힘이 실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NHK 출구조사에서 98석이었던 입헌민주당은 128~191석이 예상됐으며 국민민주당 역시 기존 7석에서 세를 불려 20~33석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자민·공명 연합이 과반에 실패할 경우 국민민주당이 새로운 연정 대상으로 떠오를 것으로 관측된다. 국민민주당은 “연정에 참여할 가능성은 없다”며 선을 긋지만 사안별로 목소리를 내면서 캐스팅보트가 될 수 있다.
/송주희 기자 sso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