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醫政) 갈등이 장기화되며 8개월 이상 지속되는 가운데 유일한 의료계 법정 단체인 대한의사협회가 흔들리고 있다. 임현택 의협 회장이 거친 막말에다 리더십 상실로 회원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면서 취임 약 반년 만에 불신임을 받아 탄핵될 위기에 직면했다. 의협은 의료계 단일 창구라고 주장하며 의정 갈등 초반부터 정부와 협상을 주도해왔다. 중도 하차했지만 ‘올바른 의료개혁 특별위원회’를 띄운 것도 의협이었다. 하지만 의협까지 흔들리면서 의정 갈등 해결의 실마리도 찾기 어려워진 상황이다.
28일 의료계에 따르면 임 회장에 대한 불신임안과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등을 다룰 임시대의원총회가 다음 달 10일께 열릴 것으로 보인다. 의협 대의원회는 29일 오후 회의를 열고 임시대의원총회 날짜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앞서 조현근 의협 부산광역시 대의원은 24일 임 회장 불신임 건과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건 등에 대해 임시대의원총회 소집을 요청했다. 현재 의협 대의원은 246명인데 임시총회 소집 요청 인원은 103명으로 불신임 발의 요건을 해당하는 인원을 넘어섰다. 임시대의원총회는 대의원 3분의 2 이상 출석한 가운데 과반수가 찬성하면 회장 불신임안을 가결하게 된다. 불신임안이 가결되면 임 회장은 2014년 노환규 전 회장이 처음으로 불신임을 당한 이래 역대 두 번째가 된다. 노 전 회장 이후 추무진·최대집·이필수 등 전직 의협 회장들도 불신임안을 맞닥뜨렸지만 모두 살아남았다.
조 대의원은 발의문에서 “임 회장은 당선인 때부터 지금까지 여러 차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막말과 실언을 쏟아내 의사와 의협의 명예를 현저히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의료계를 결정적으로 술렁이게 한 부분은 임 회장이 서울시의사회의 A 이사가 한 의사 전용 익명 게시판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 4억 원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글을 올린 것과 관련, 고소 취하 명목으로 합의금 1억 원을 현금 5만 원권으로 요구했다는 점이다. 김택우 전국시도의사회장협의회장은 “조폭이나 할 범죄행위”라며 임 회장이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협 당연직 정책이사인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달 24일 의협 임원진 단체 채팅방에 관련 기사를 공유하며 “현금 요구가 사실이냐”고 물어 설전을 빚었다. 임원진은 “(대전협이 받은) 전공의 성금 4억 원에 대한 감사 자료나 의협에 제출하라”고 반박했다. 사직 전공의 출신 임진수 기획이사도 박 비대위원장을 향해 “전공의와 의대생의 미래를 볼모로 잡고 내부 정쟁에 골몰하는 이런 지저분한 짓은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임 회장에 대한 반대 여론이 거센 것은 내부 설전에도 보이듯 의정 갈등 핵심인 전공의·의대생과의 갈등과도 무관하지 않다. 김교웅 의협 대의원회 의장은 24일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대전협 비대위와 관계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집행부는 스스로 결단을 내려야한다”고 지적했다.
임 회장은 앞서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조현병 환자 비하 발언을 해 정신장애인 단체와 의료계의 거센 비난을 받고 사과한 바 있다. 외국 의사의 국내 진료 허용과 관련해서는 소말리아 의대 졸업식 기사를 링크하며 ‘커밍순’이라고 언급, 인종차별 논란을 받기도 했다. 그는 국회에 출석해서도 이 같은 막말 논란과 관련해 ‘표현의 자유’라며 사과하지 않았다. 의사 회원들은 간호법 제정을 막지 못했다는 점, ‘무기한 집단 휴진’ 언급 당시 시도의사회와 협의가 없었다는 점에 대해서도 반감이 크다고 전해졌다.
이에 대해 임 회장은 자진 사퇴하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의협 관계자는 “이번 일을 계기로 임 회장 반대파의 의견까지 모두 다 수용하고자 한다”며 “지금 회장이 물러나면 혼란만 더 커질 수 있다. 힘을 더 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