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4·10 총선 참패 이후 201일 만에 선거의 패인을 분석한 총선백서를 28일 공개했다. 여권 내 ‘판도라의 상자’라고 불린 백서에는 당정 갈등과 시스템 공천 미비, 당의 전략 부재 등을 핵심 패인으로 명시하며 사실상 한동훈 대표의 책임론을 정조준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내에서는 한 대표가 추진하는 특별감찰관 논의를 위한 의원총회의 공개 여부를 놓고 친한(친한동훈)계와 친윤(친윤석열)계가 또다시 충돌하며 계파 갈등이 고조되는 모습이다.
국민의힘 총선백서특별위원회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 보고한 뒤 공개한 백서 전문에 따르면 △불안정한 당정 관계 △미완성의 시스템 공천 △당의 승부수 전략 부재 등이 주요 총선 패인으로 적시됐다. 백서는 먼저 불안정한 당정 관계 탓에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과 호주대사 임명, 의대 정원 정책, 대파 논란 등 연이은 이슈가 정권 심판론에 불을 붙였지만 당도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악재를 제공한 대통령실 못지않게 적극 대처하지 못한 한동훈 지도부에도 책임이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또 다른 패인으로 지목한 총선 공천 문제와 관련해서는 한 대표를 겨냥한 날 선 비판이 담겼다. 총선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자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던 한 대표는 사심 없는 시스템 공천을 추진했지만 비례대표 공천을 놓고 친윤계 핵심인 이철규 인재영입위원장과 정면 충돌한 바 있다. 시스템 공천을 ‘반쪽짜리’라고 혹평한 백서는 “당이 일찍부터 인재 영입을 준비하지 못해 후보군에 한계가 있었고 총선 직전 만들어진 기준도 많은 사람들이 납득하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또 친한계가 대다수를 이루는 비례대표 공천을 두고도 “취약 지역 안배에 실패했을뿐더러 공관위의 비례대표 후보 면접 심사 결과가 제대로 공유되지 않고 현재도 남아 있지 않다”며 “심각한 절차적 하자로 시스템 공천이 이뤄졌는지 의문”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특히 공천 신청도 하지 않은 후보가 당선 안정권에 배정된 점에 대해 “다양한 우려에도 지도부가 공천을 강행한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백서는 총선 전략에 대해서도 한 대표가 강조한 ‘이조(이재명·조국) 심판론’은 “집권 여당의 선거 전략으로 적절하지 못했다”며 “오히려 야당의 일관된 전략에 밀려 선거를 정권 심판론에 가두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악평했다. 반면 백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실정과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이슈는 총선 패배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하지 않았다. 이번 백서가 ‘한동훈 책임론’에 더 가깝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한 대표는 이날 백서에 대해 “평가는 백서가 하는 게 아니라 국민들이 하는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 친인척을 감찰하는 특별감찰관 도입을 둘러싼 신경전을 이어온 친한계와 친윤계는 이날도 결정 방식을 놓고 정면 충돌했다. 친한계 김종혁 최고위원은 특별감찰관 논의에 대해 “공개 의원총회를 통해 토론과 표결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 대표가 제안한 특별감찰관 도입에 대한 찬성 여론이 높은 만큼 공개 토론을 통해 친윤계를 압박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반면 친윤계는 당내 문제를 공론화하려는 시도에 대해 불편한 심경을 감추지 않았다. 한 친윤계 의원은 “단합을 해도 모자랄 판에 당내 의견이 갈리는 모습이 노출되면 결코 당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총선 백서 공개와 특별감찰관 추진을 둘러싼 계파 대결이 맞물리면서 내홍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자칫 여권의 공멸을 불러올 수 있는 만큼 물밑 논의로 절충안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