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분쟁에 휩싸인 고려아연(010130)이 자사주 공개매수 기간에 유상증자 실사를 진행했다는 의혹에 대해 “날짜를 착오해 증권신고서에 기재했다”고 해명하자 금융감독원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수조 원이 걸린 판단을 내리면서 신고서를 그 정도로 허술하게 작성했다는 입장을 그대로 믿기 힘들다며 “해명조차 거짓말이면 더 심각한 상황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고려아연은 1일 입장문을 내고 자사의 2조 5000억 원 규모 기습 유상증자와 관련해 금감원이 전날 ‘수사기관 이첩’ 가능성까지 내비친 데 대해 “회사가 일반공모 증자를 검토한 것은 지난달 23일 자기주식 공개매수 종료 이후”라고 주장했다. 또 “실사보고서에 10월 14일부터라고 기재한 것은 착오해 잘못 쓴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려아연은 구체적으로 미래에셋증권(006800)이 지난달 14일 시작한 실사는 유상증자와는 별개로 자사주 공개매수에 든 차입금을 처리하기 위한 부채 조달 관련 작업이었다고 해명했다. 당시 결과를 유상증자 실사에도 활용하면서 신고서에 잘못 기재했다는 설명이었다. 고려아연은 “투자자들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초래한 점에 대해 양해 말씀을 드린다”며 “당국과 시장에 사실관계를 정확하고 성실하게 설명해 논란을 해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감원은 일반적인 상식 차원에서 볼 때 고려아연과 미래에셋증권 측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고려아연이 이날 거짓 해명으로 한 번 더 시장을 교란한 것이라면 문제가 추가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실제로 고려아연 측 해명대로면 이 회사는 지난달 23일 자사주 매입이 다 끝난 뒤 유상증자 논의에 들어가 증권신고시를 낸 30일 오전 10시 전까지 고작 4영업일 만에 미래에셋증권 실사를 비롯한 모든 작업을 속전속결로 끝마친 게 된다. 그 사이 투자자들은 미래에셋증권이 고려아연의 자사주 부채조달 부분을 실사한 사실도 몰랐다.
금감원의 한 고위관계자는 “날짜 착오이니, 오탈자이니 하는데 공시 서류가 애들 장난이냐”며 “검사와 조사 작업이 다 진행 중이니 사실관계만 확인하면 될 뿐 고려아연 측이 언론플레이를 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만약 이번 해명이 또 거짓말이라면 더 심각하다”며 “자금 조달 계획, 금리 등 유상증자를 준비하며 따져야 할 것이 많은데 고려아연 정도 되는 상장사가 그렇게 졸속으로 신고서를 작성할 수 있는가”라며 “투자자들이 고려아연의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고려아연은 지난달 4~23일 자사주를 공개매수한 뒤 같은 달 30일 돌연 2조 5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 안을 발표한 바 있다. 고려아연은 해당 증권신고서에서 미래에셋증권이 지난달 14일부터 유상증자를 위해 실사를 진행했다고 썼다. 자사주 공개매수 기간과 완전히 겹치는 일정이었다. 기습적인 유상증자 안 발표에 따라 고려아연 주가도 출렁거렸다.
금감원은 이에 지난달 31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주주가치 제고에 부합하는지, 의사 결정 과정이 투명한지 등을 모든 역량 동원해서 규명할 것”이라며 “부정 거래 등 위법 혐의가 확인되는 경우 해당 회사뿐 아니라 관련 증권사에도 엄중히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고려아연이 유상증자 사실을 알고도 공개매수 신고서에 계획이 없다고 했다면 허위”라며 “적발된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수사기관에 이첩하겠다”고 강조했다. 금감원은 같은 날 고려아연 측 공개매수와 유상증자를 주관한 미래에셋증권에 대한 현장 검사에도 돌입했다.
한편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MBK파트너스·영풍(000670) 연합은 이날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임시주주총회 소집 허가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