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신문 기자들과 와타나베 나츠메 교도통신 주한특파원으로 구성된 한국·일본 공동 취재진은 ‘0.7과 1.2 저출생 솔루션’ 시리즈를 통해 두 나라가 맞닥뜨린 저출생 문제의 해법을 구했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의 일부 기업과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모범 사례를 찾을 수 있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소수의 변화가 아닌 사회시스템 차원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맞닥뜨렸다. 취재에 참여한 양국 기자들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최슬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상임위원,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유재언 가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와 함께 좌담회를 열고 저출생의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대안을 모색했다. 다양한 제도적 유인책을 통해 경쟁과 격차를 완화하는 방안, 성평등과 중소기업을 감안한 섬세한 정책 설계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기업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서울경제신문 회의실에 모인 전문가들은 저출생의 근본적인 원인과 해법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우선 치열한 경쟁만을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 상임위원은 의대 진학 열풍을 언급하며 “추구하는 꿈이 하나라면 모두가 경쟁적이 될 수밖에 없지만 꿈이 서로 다르다면 경쟁 양상이 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두가 사교육을 받으려 수도권으로 몰리는 경쟁 대신 다양한 지향점이 생겨나야 한다는 것이다. 자칫 거대 담론처럼 들릴 수 있는 이야기지만 제도 개선을 통해 유도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신 교수는 “블라인드 채용을 늘리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최근 언급한 대입 지역별 비례선발제 같은 방식도 고려해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저출생 문제는 원인과 양상이 복잡한 만큼 섬세한 정책 설계가 핵심이라는 지적 또한 이어졌다. 최 상임위원은 “복지 정책은 사회 최약자들을 겨냥한 정책이지만 인구정책은 범위가 더 넓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저출생 문제도 최상층을 제외하면 결혼과 출산이 어려운 양상이 제각각 다르다”며 “다양한 상황에 어떻게 맞춰갈지 모두 고민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결혼의 계급화’가 보편화되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중산층 이상이 결혼할 확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그는 “비정규직이거나 경제적인 고충을 겪고 있는 등 가장 결혼이 어려운 청년층이 전체 청년의 40% 정도”라며 “이들을 감안한 폭넓은 정책을 시행하되 특별히 더 지원해야 할 집단과 중산층 집단에 각각 맞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평등 관점에서의 정교한 정책 설계는 그 중요성만큼이나 빠르게 제도에 녹아들고 있다. 신 교수는 “여성들이 ‘마미 트랙(mommy track)’에 머무르지 않도록 남녀 모두 육아휴직과 유연근무를 쓰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마미 트랙이란 주로 여성이 출산 후 육아휴직·유연근무를 택해 남성보다 승진에 불리해지는 경향을 가리킨다. 최 상임위원 역시 성평등이 관건이라는 점에 동의하면서 “여성만을 대상으로 지원을 확대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며 남성도 어려움을 공유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한다는 방향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올 6월 저고위가 발표한 6·19 대책에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을 2027년까지 50%로 올린다는 목표치가 포함된 것 또한 이러한 인식 때문이다.
현재 대기업이나 정부 기관에서는 남성 육아휴직 사용이 과거보다 한결 수월해졌지만 50%라는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 남성 근로자들의 사용률도 높아져야 한다. 이 때문에 정부는 남성 육아휴직 사용이 여전히 어려운 중소기업들에 육아휴직 대체인력고용지원금·동료업무분담지원금 등을 지원해 부담을 덜도록 제도를 개선하기도 했다.
신 교수는 “이번 시리즈 기사에서 다룬 일본의 여성활약추진법과 비슷한 제도가 우리나라에도 있지만 적극적이지는 못하다”며 “여성 채용 비율, 근속 일수, 관리직 비율 등을 기업들이 공개하도록 하는 성별근로공시제를 제대로 추진한다면 빠른 시일 내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짚었다. 성별근로공시제는 현재 공공기관·공기업에만 적용되고 있다.
취재진이 앞서 기사에 담은 것처럼 기업과 정부의 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유 교수는 “기사에 소개된 KB국민은행의 ‘재채용 조건부 육아 퇴직’ 제도가 인상적이었다”며 “정부 차원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고 전국적 확산은 어려운 제도지만 기업마다 자발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면 사업장마다 특화된 맞춤형 제도가 등장할 것이고 비슷한 다른 기업으로 확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상임위원 역시 “유연근무가 어려운 직종이나 기업도 분명히 있다. 기업 차원에서 직무에 맞는 유연근무를 고안하고 그럴 여력이 없는 기업들은 기업 경쟁력 차원에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도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해외 성공 사례를 한국에 이식할 때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앞서 기획에서는 한국과 문화가 비슷한 일본 외에도 독일·헝가리 등의 돌봄 시스템과 정부 지원책 등을 다뤘다. 그러나 출산·육아를 여성의 일로 간주하는 경향이 여전히 강한 한국에서 유럽식 정책을 펼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또 비정규직 비중이 높고 정규직과의 격차가 큰 한국에서 독일 등의 유연근무 제도를 그대로 도입할 수 없다는 점, 헝가리의 경우 한국과 달리 출산을 원하는 청년층 비중이 높고 가정을 중시하는 문화가 강하다는 점도 고려할 부분으로 지목됐다.
이민·비혼 출산에 대해서도 토론이 이어졌다. 와타나베 특파원은 일본에는 없는 한국의 ‘비혼’에 주목하며 실제 비혼식을 치른 한국 여성을 인터뷰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한국은 유교 문화 때문에 한부모가정부터가 어렵지만 유럽은 결혼과 출산이 분리돼 있다”며 “쉽지는 않겠지만 결혼 없이 아이를 낳으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불이익 없이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사회적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프랑스처럼 비혼 출산을 지원한다고 해서 비혼 출산이 갑자기 늘어나지는 않겠지만 지금 우리나라 청년들은 낳거나 임신중절을 하거나 두 개의 선택지뿐이라는 한계가 있다”며 “제3의 선택이 가능하도록 선택지를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최 상임위원은 “다양한 민족과 종족의 어울림은 미국조차도 여태껏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 비중이 이미 전체 인구의 5%”라며 “지금까지 주로 저숙련·단기 외국인 근로자들이 한국을 찾았지만 이제는 더 오래 체류하면서 어울려 살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 교수는 “이주 근로자를 인구정책에 포함시키는 방향성을 담은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 발의되는 등 정부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외국인 근로자 지원책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외국인들이 가족 단위로 정착할 수 있도록 국내에서 출산하면 한국 시민권이나 국적을 인정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참석자들은 이러한 변화가 최종적으로 한국 경제와 사회의 새로운 성장을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했다. 유 교수는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토대를 국가가 마련해준다면 사람들이 보다 다양한 선택을 하고 자연스럽게 성장의 결실도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가정을 꾸리거나 아이를 낳는 데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신 교수는 “가장 중요한 가치로 ‘가족’을 꼽는 다른 나라 사람들과 달리 한국인들은 ‘돈’을 꼽는다. 한국인들이 속물이라서가 아니라 점점 자산 격차는 늘어나는데 복지가 취약하기 때문”이라면서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나든 기본적인 것은 국가가 챙겨준다는 신호가 중요하고 그러한 측면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지급하는 아동수당을 강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제시했다. 이어 “현금 지원은 대체로 반대하는 입장임에도 아동수당은 ‘국가가 나의 삶을 받쳐줄 것’이라는 신뢰를 형성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최 상임위원은 “지금까지의 성장 메커니즘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인구문제와도 맞물린 것”이라면서 “앞으로 새로운 성장 메커니즘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출생률이 위기 상황이라는 점은 안타깝지만 그래서 변화의 기회가 될 수 있다”면서 “이 기회마저 놓친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이 닥칠 수 있기 때문에 공감대가 형성됐을 때 제대로 바꿔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