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부분의 사업장은 연공서열식 호봉제인데 이대로 정년만 65세로 연장된다면 한국 사회의 격차는 더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5일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에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치권과 정부 일각에서 논의되는 정년 65세 연장에 대해서 작심하고 쓴소리를 했다.
이 부회장은 “정년만 연장하면 대기업과 공기업과 같이 ‘거대 강성 노조’, 평균 연봉이 1억 원이 넘는 사람들, 호봉제로 월급이 계속 올라가는 사람들만 혜택을 볼 것”이라며 “그 밑에 가려진 중소기업과 영세기업, 소상공인들은 정년 자체가 없어 소외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대기업 정규직 월급, 중기 근로자 두 배
노조 있는 대기업 근로자에만 집중 혜택
노조 있는 대기업 근로자에만 집중 혜택
그는 “한국은 디지털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고령 인력이 있고 활용도 중요하다”며 정년 60세 이후에도 일할 제도를 만들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은 공감했다. 그러면서도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의 임금이 비정규직 중소기업 근로자의 약 두 배인 현실을 지적했다. 지금 상황에서 정년 연장에 나설 경우 고학력, 남성, 300인 이상 기업, 공공부문, 유(有) 노조기업, 정규직들만 혜택을 집중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이 부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법으로 정하는 정년 연장보다는 ‘퇴직 후 재고용’ 정책이 우선 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실제로 초고령사회를 빨리 겪은 일본도 정년은 여전히 60세다. 다만 2004년 65세 고용확보조치를 의무화하면서 노사가 자율적으로 △정년 연장 △계속 고용(재고용) △정년 폐지 등을 정할 수 있게 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며 지난해 말 기준 300인 초과 기업의 81.9%가 계속 고용으로 65세까지 고용확보 조치를 하고 있다.
독일·프랑스는 호봉제 아닌 직무급제
“연공서열식 임금 개편 없는 정년연장,
생산성 떨어지는 60세 월급 더 올라”
“연공서열식 임금 개편 없는 정년연장,
생산성 떨어지는 60세 월급 더 올라”
이 부회장은 “고령자의 고용안정성을 떨어뜨리는 핵심 원인인 현행 연공급 임금체계부터 직무·성과에 기반한 임금체계로 개편하는 법과 제도 개선이 먼저 논의되어야 한다”고도 역설했다.
이 부회장은 “이 문제가 해결 안 되면 60세 이상 근로자가 생산성은 떨어지는데 월급은 더 많이 주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며 “임금체계 개편 없이 정년만 연장되면 청년층의 신규채용 여력을 감소 시켜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 간 갈등이 심화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직무급제 전환도 또 다른 방안으로 제시했다. 이 부회장은 “‘어렵고 힘든 업무에 따라 임금을 달리 받는 직무급제로 전환하면 법적으로 정년을 못 박지 않아도 계속 고용이 유지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직무급제를 도입하고 있는 유럽 국가는 법적 정년이 없는 대신 연금 개시 년도를 정년(독일 67세·프랑스 64세)으로 간주되고 있다.
60세 정년 연장 때 임금체계 개편 안 해
고령층 고용 0.6명 늘고 청년 0.2명 줄어
“졍년연장 시 임금체계 개편 의무화해야”
고령층 고용 0.6명 늘고 청년 0.2명 줄어
“졍년연장 시 임금체계 개편 의무화해야”
정년 연장을 법으로 정하면 임금 체계도 개편하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13년 정년 60세 법제화와 함께 임금 개편 의무가 법률로 명시되었지만 노동조합의 동의가 필수가 되면서 개편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일갈했다.
실제로 2016년 1월부터 정년이 60세로 연장된 후 고령층 고용은 늘어난 반면 청년 고용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한국개발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정년 60세 의무화 이후 고령층(55~60세) 고용은 0.6명이 증가하고 청년층 고용은 0.2명 감소한 것으로 추정됐다. 2020년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도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상향한 사업장과 정년제를 운영하지 않은 사업장을 비교한 결과 고령층(55세 이상) 고용이 늘었고 청년층(35세 미만) 고용은 줄어든 것으로 나왔다.
이 부회장은 “고령자 고용을 활성화를 위해 일본처럼 근로자의 평균 임금이 저하되지 않는 임금체계 개편은 ‘과반수 근로자 동의’ 가 아닌 ‘의견청취’ 만으로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정년 60세 이후 재고용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 정년이 지난 고령자에 대한 재고용은 기존 근로계약과는 다른 새로운 근로관계가 형성된 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며 "정년 후 재고용에 대한 법적인 안정성을 높이고 재고용할 고령자에 대한 기업의 선택권도 보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주 4일제 36시간 근로는 “부작용 커”
판교 IT 기업은 주 4일제 자율 도입 中
“유연근로시간, 노사가 자율로 정해야”
R&D는 美 ‘이그젬션 제도’ 도입 필요
판교 IT 기업은 주 4일제 자율 도입 中
“유연근로시간, 노사가 자율로 정해야”
R&D는 美 ‘이그젬션 제도’ 도입 필요
이 부회장은 최근 민주당을 중심으로 논의되는 ‘주 4일제’에 대해서도 “22대 국회에서 1주간 법정 근로시간을 36시간으로 단축하는 주4.5일제 법안이 발의되어 있다”라며 “낮은 생산성에 따른 기업 경쟁력 저하와 기존 생산량을 보존하기 위해 인력을 늘려야 하기 때문에 인건비 부담이 따른다"고 지적했다.
그는 법정 근로시간만 단축시키기 보다는 노사가 노동시간을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는 논의에 집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은 “주 4일제를 법으로 강제하지 않아도 정보통신(IT) 기업이 많은 판교 같은 곳에는 4일, 4.5일 등을 하는 곳이 많다”며 “노사 합의 하에 자율적으로 하면 되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이 부회장은 “우리나라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근로시간이 최상위권에 속한다는 노동계 주장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더 이상 과도한 장시간 근로 국가로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1인당 연간 평균 실근로시간은 2008년~2023년 15년 간 2200시간대에서 1800시간대로 줄어들었다. 감소폭이 OECD 국가 중 가장 크다. 경총 조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풀타임 임금근로자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42시간으로 OECD 평균인 40.7시간에 비해 약 1시간 정도 차이가 난다.
이 부회장은 “현행 1주 단위로 근로시간 법정 최대 한도를 정하면 급작스러운 주문 증가 등에 대한 신속한 대응이 어렵다”며 “연장근로 산정 기준을 주 단위에서 월·분기·반기 단위로 변경하고 법으로 정한 재량근무제 대상 업무도 노사 자율로 결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이 부회장은 연구개발(R&D) 업무 등에는 미국의 ‘화이트칼라 이그젬션(White-Collar Exemption)’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그젬션 제도는 관리직과 운영직, 전문직, 컴퓨터관리직, 외근영업직 등의 근로자가 직무요건을 갖추고 일정 수준 이상의 주급(주 684달러 이상)을 받을 경우 초과 근로수당 및 최저임금 적용을 제외하는 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