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환경부의 가뭄 대응 관련 연구 과제에 참여하면서 물 공급 소외 지역에 맞는 댐 방식을 고민하다가 샌드댐(모래 저장 댐)에 착안한 아이디어를 냈는데 이를 국내 환경에 맞게 개량한 게 바이패스(우회)형 샌드댐입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과 서울경제신문이 공동 주관하는 ‘이달의 과학기술인상’ 11월 수상자로 선정된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수자원하천연구본부장인 정일문 박사가 국내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프리카 사막에서 주로 쓰이는 원시적 댐 기술인 샌드댐을 응용하는 역발상 해법을 제시해 주목을 받았다. 정 박사 연구팀의 바이패스형 샌드댐 개발 성과는 2022년 ‘인터내셔널 소일 앤드 워터 컨서베이션 리서치’와 ‘워터’ 등 수자원공학 분야 국제 학술지에 잇달아 게재됐다. 강원 춘천시 소양강 상류 지역에 상용화를 위한 시범용 댐도 운영 중이다. 정 박사는 “세계 최초로 개발한 기술”이라며 “향후 상용화 시 국내뿐 아니라 해외 건조 지역에도 적용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6일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국내에서 상수도가 아닌 계곡수 등에 의존하는 수도 시설은 총 622곳이다. 상수도 보급률이 98%에 달하지만 나머지 2% 지역은 여전히 다목적댐을 통해 안정적으로 식수와 농업용수를 공급받을 수 없어 가뭄에 크게 취약한 실정이다. 다목적댐은 물을 대용량으로 저장할 수 있지만 이보다 상류에 있거나 멀리 떨어진 산골 마을 같은 일부 소규모 지역들은 혜택을 못 누리는 것이다. 이 같은 사각지대를 해소할 소형 댐이 필요하지만 저장 용량이 작은 데다 계곡수 특성상 여름철에만 크게 범람해 일정하고 지속적인 물 공급이 힘들다는 한계가 있다. 이물질과 야생동물로 인한 수질오염 관리도 어렵다.
정 박사 연구팀은 샌드댐에 주목했다. 샌드댐은 물을 모래 더미에 흡수시켰다가 조금씩 꺼내 쓰는 일종의 ‘모래 스펀지’다. 아프리카 사막처럼 비가 거의 오지 않고 강도 거의 흐르지 않는 건조 지역에서는 1년에 한두 번 내리는 비를 모래 더미에 흡수시켜 장기간 보관했다가 천천히 새어 나오는 물을 지하수처럼 사용하는 샌드댐이 널리 쓰이고 있다. 모래에 갇힌 물은 잘 증발하지 않고 겨울철에도 얼지 않으며 모래가 이물질을 걸러주는 ‘천연 정수 필터’ 역할도 해준다는 장점이 있어서다.
샌드댐을 국내에 바로 적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취수원인 하천 안에 직접 설치하면 특히 여름철에 거세지는 물살로 인해 모래 더미가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바이패스형 샌드댐은 하천의 가장자리인 곡류부에 모래 더미를 설치해 하천을 막지 않으면서도 물을 저장할 수 있다. 강물이 주변 토양에 스며들었다가 지하수처럼 솟아 나오는 일종의 지하수를 흡수해 저장하는 원리다. 정 박사는 “국내 하천과 달리 지하수는 1년 내내 일정하게 공급된다”며 “다만 지하수 양이 적다는 한계가 있는데 바이패스형 샌드댐이 ‘지하수 물탱크’ 역할을 하며 그 양을 늘리는 효과를 만드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만든 춘천 시범용 댐은 하루 평균 281㎥(28만 1000ℓ), 최대 462㎥(46만 2000ℓ)의 물을 인근 마을에 공급 중이다.
연구팀은 기술 고도화도 추진 중이다. 기존 댐과 샌드댐을 혼합한 ‘하이브리드 댐’이다. 정 박사는 “샌드댐을 설치하면 주변 지하수의 수위가 높아진다”며 “차수벽 설치를 통해 지하수를 가두는 일종의 지하수댐을 만들면 샌드댐과 별도로 물을 공급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댐이 될 수 있어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바이패스형 샌드댐을 국내외에 상용화하기 위한 예산 지원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