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적인 내시경 검사는 위암, 대장암의 조기발견과 예방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로 꼽힌다. 우리나라는 만 40세부터 증상이 없어도 위내시경검사를, 만 45세부터 분변잠혈검사를 시행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검사 결과 대변에 피가 섞여 나오면 대장내시경검사를 받을 수 있으며, 필요한 경우 대시경 도중 조직검사가 이뤄진다.
그런데 국가암검진사업에서 시행되는 내시경 시술 자격을 두고 의료계 내부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종전까지 내과가 도맡았던 '내시경시술 인증의' 자격 교육 및 부여 권한을 외과, 가정의학과에 열어주는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찬반이 엇갈리는 양상이다.
12일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국가암관리위원회 산하 암검진 전문위원회는 5주기 국가암검진 평가(2025~2027년)를 앞두고 내시경 인증의 자격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암검진 내시경 분야 평가 지표 중 인력 평가 부문 지침을 대한외과학회와 대한가정의학회 내시경 인증의도 인정하는 방향으로 개정하고 당장 내년 평가 때부터 적용하는 안이 유력하다. 검진기관 평가 시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와 대한위대장내시경학회가 진행하는 내시경 연수교육과 인증의 자격만 인정했던 현행 지침을 벗어나 다른 학회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해당 안건은 지난달 15일 암검진 전문의 회의에 상정돼 투표까지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부는 국가건강검진 질 향상과 검진 서비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2012년부터 3년 주기로 기관 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의료기관 종별로 일반검진, 영유아검진, 구강검진, 암 검진 등 각 분야마다 검진 기관의 적합성 여부를 평가한다. 누적 평가 결과에 따라 업무 정지, 지정 취소로도 이어질 수 있다. 그간 의료계 일각에서는 내시경 시술 인력에게 요구되는 연수교육과 자격 부여 권한을 2개 학회로 제한하는 것을 두고 꾸준히 문제가 제기돼 왔다. 연수교육이나 인증의 자격 부여 권한을 다른 학회들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시경 시술 수요가 높아지는 가운데 현장 인력난이 심화하자 정부도 제도 손질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다만 진료과별 기조는 극명하게 갈린다. 가정의학과와 외과 의사들은 인력평가 기준 확대를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던 만큼 반기는 분위기다. 대한가정의학과의사회는 “적정한 자격을 갖춘 모든 진료과에서 학술대회와 연수강좌는 동일 기준에서 인정받아야 한다”며 “(내시경 시술을) 특정 과가 배타적으로 독점하는 것은 국민 건강을 위해 좋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사 한 명이 하루 30명 이상 내시경 검사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정 학회가 연수교육 인정 확대를 거부하는 것은 국민건강 증진에 반하는 태도"라고 꼬집었다.
반면 기존에 연수교육을 도맡아 온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 위대장내시경학회는 암 검진의 질 저하를 이유로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 학회에 따르면 현재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에서 인증받은 소화기내시경 세부 전문의가 매년 300명 이상 배출되고 있다. 현재까지 배출된 인력은 9466명에 달한다. 지금도 내시경 전문의가 충분히 양성되고 있고 서류심사, 필기시험, 구술시험 등 자격시험을 통과한 경우 내과는 물론 외과, 소아청소년과 의사도 인증의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데 수련 과정이 부족한 학회가 연수교육 자격을 가져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와 대한내과학회, 대한소화기학회, 대한간학회, 대한상부위장관헬〮리코박터학회, 대한장연구학회, 대한소화기기능성질환·운동학회, 대한췌장담도학회, 대한소화기암연구학회, 대한위대장내시경학회, 대한내과의사회, 대한소화기내시경간호학회 등 11개 단체는 이날 공동 성명서를 통해 "국가암검진 내시경 인증의 정책변화를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내시경 시술 중에는 출혈, 천공, 진정관련 심폐 합병증 등 수검자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중대한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어 기본적으로 내과 전문의 수련 과정이 필수적이다. 의대 정원 확대 추진 등으로 의료체계가 혼란한 상황에서 국가암검진 내시경 인증의 정책을 바꾸면 국가암검진 내시경 사업을 무너뜨리고 수준을 떨어뜨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할 것"이라며 "정책변화가 강행될 경우 국민 건강 수호를 위해 가용한 모든 조치를 행하겠다"고 경고했다.